WP "북한에 조롱당한 문 대통령…그래도 北 포기 않을 것"

"북한, 하노이 노딜 이후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 상실"
사진은 지난해 6월30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으로 돌아가면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미국 유력매체 워싱턴포스트(WP)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귀빈(VIP) 대접을 받다가 조롱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이 꿈을 버릴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이날 WP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한 일련의 대북 정책을 두고 "한반도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문 대통령의 '개인적인 십자군 운동(personal crusade)'이었다"고 평가했다.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상황에 대해선 "문 대통령은 현재 빠르게 고조되는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한때 자신이 구애했던 정권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어 "김정은 정권이 2018년 4·27 남북 정상간 판문점 공동 선언문을 사실상 찢어버렸다"고도 했다.

WP는 문 대통령의 앞선 평양 방문에 대해 "북한 난민 부모 밑에서 태어나 대통령 임기 상당 부분을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이라는 꿈에 매달린 한 남자의 승리의 순간이었다"고 했다.

다만 "문 대통령의 꿈이 과연 현실적이었는지는 토론의 여지가 있다"면서 "분명한 것은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붕괴(disintegrate)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하노이 노딜'을 통해 북한 핵프로그램 해체 조건 등을 둘러싼 큰 간극을 깨달았고 중재자로서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WP는 짚었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에서 약속한 경제적 이익 제공에 실패한 것도 북한 정권의 신경을 긁었다고 덧붙였다.

WP는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를 인용해 "문 대통령은 진퇴양난(between a rock and a hard place)"이라며 "대북 제재 틀 안에서 미국을 자극하지 말라는 취지로 인도적 지원을 제안했지만 북한이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북한은 돈을 원했고 문재인 정부는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김두연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한국에 미국과 북한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한국인을 다치거나 죽이지 않는 한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남북관계 악화를 미국의 책임으로 돌릴 것"이라고 분석했다.이어 "문 대통령이 꿈을 버릴 것 같지는 않다"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덕분에 4월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자신의 기조를 밀어붙이기 충분한 위치에 서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전날 낮 청와대에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등 외교안보 원로들을 만나 오찬을 하면서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을 두고 "국민이 보면서 실망했을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언급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인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 부부장이 상황을 분리해 대응하는 만큼 정상 수준에서 대화의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언제든 기회가 있을 수 있으니 실망 말고 노력해보자'는 의견에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라고 전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