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술, 제대로 즐기기

이호원 < 대한상사중재원 원장 hwlee@kcab.or.kr >

요즘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혼술’이 대세여서 상대방 없이 혼자 술을 즐기는 일이 흔한 듯하다. 나도 간혹 집에서 긴장을 풀고 맥주의 시원한 맛을 즐길 때가 있다. 물론 직장 관계로 마시기도 하고, 대부분은 친구들과 함께 마신다. 특히 주말에 마음 맞는 친구들과 산행을 마치고 두부김치와 파전을 안주 삼아 마시는 막걸리는 별미여서, 나의 ‘소확행’을 제대로 챙기는 느낌이다.

술의 긍정적인 역할이라면 인간사의 공식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좌중의 긴장을 풀어준다는 점이다. 나도 술을 마시면 마음의 끈이 다소 느슨해져서 스스로 말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급기야는 평소에 하지 않았을 말을 하고 나서 후회한 일도 있다. 그래도 함께 술을 마시고 나면 사무적인 관계에서는 체험하기 어려운 상대방의 인간적 체취를 느끼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들이 어떻게 인간 관계와 세상사를 이해하고 평가하는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또 서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다 보면 나만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라는 동류의식을 느끼고, 때로는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문제는 술이 과하면 종종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술을 마시면 어느 정도 객기를 부릴 때가 있는데, 가벼운 일탈에 그치면 좋지만, 정도를 넘어 큰 실수를 하거나 맨정신으로는 못 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더구나 술을 마시다 보면 적절한 선에서 끝내지 못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지난날 술을 마시고 몇 차례인가 밝히기 부끄러운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실수를 반복하고 나이도 들다 보니 술도 약해져서, 내 나름대로 주의에 주의를 거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경험상 술은 괴롭거나 슬플 때보다는 가급적 즐거울 때 마실 것을 권한다. 즐거울 때는 실수를 해도 비교적 가벼운 정도에서 그치는 수가 많고, 상대방도 편한 마음에서 실수를 바로잡아주거나 관대하게 봐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괴롭거나 슬플 때 마시다 보면 간혹 뜻하지 않은 낭패로 이어진다. 정 괴롭거나 힘들어서 술의 힘을 빌리고 싶을 때면,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나에게 진정어린 도움말을 건네줄 수 있는 상대와 함께 마시는 것이 좋다.

어찌 보면 술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건, 바로 내게 주어진 인생을 제대로 음미하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과도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혹은 숱하게 만나는 상대방과 같은 술을 마시더라도 매번 다른 생각, 다른 감정을 체험하면서 나날이 조금씩 변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내가 술을 즐기는 방법도 와인이 익어가듯, 잘 숙성돼가면 좋겠다. 마침내는 내면의 나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진정한 ‘혼술’의 경지를 즐기게 될 날을 맞이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