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0년 전 악몽'…연평도에 여전히 남아있는 포격의 상흔들

19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도안보교육장.
밤사이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섬은 대체로 평온한 모습이었지만, 이곳 교육장에 보존된 피폭 건물들은 10년 전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북한의 포격으로 벽면이 파손되고 검게 그을린 주택 3동은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대변했다. 2010년 11월 북한이 쏜 포탄 170여발이 연평도와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에 떨어졌다.

이 포격으로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로부터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연평도 곳곳에는 여전히 포격의 상흔들이 남아있다.
김재국(64)씨는 지나간 세월 속에 그날의 기억도 희미해졌지만, 문득 망자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힘들다고 했다.

김씨는 "포격으로 숨진 민간인 2명은 해병대 관사 신축공사장에서 작업하던 인부들로 1명은 현장 반장, 1명은 미장공이었다"며 "나도 그 당시 고철 수집을 위해 작업 현장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사람의 영정 사진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고 있을 때가 제일 힘든 순간이었다"며 "그들의 얼굴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의 트럭을 타고 5분여간 이동해 도착한 당시 포격 현장에는 밑동이 검게 탄 소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섬 안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포격의 흔적들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었다.

포격으로 인해 피해를 본 도로 주변으로는 붉은 깃발이 꽂혀 있었다. 파손된 도로들은 복구된 상태지만, 안내판에 게재된 피해 사진과 설명글을 통해 당시 상황이 기록돼 있었다.

고 서정우 하사의 해병대 모표는 소나무에 박힌 채로 10년을 보냈다.

연평부대 중화기중대원인 서 하사는 휴가를 포기하고 복귀하던 중 포격에 휩싸여 전사했다.

포격 여파로 소나무에 박힌 서 하사의 모표는 둥근 보관함에 쌓여 보존되고 있었다.

일부 섬 주민들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남긴 상처가 이제는 무뎌졌다고 했지만, 그날의 기억을 쉽게 떨쳐낼 수 없다는 주민들도 있었다.
이기숙(79)씨는 집 안에 머무르고 있다가도 큰 소리가 들려오면 여전히 깜짝 놀라 바깥으로 나온다고 했다.

그는 "큰 차량이 지나가거나, 단순한 공사 소음이 들려도 무서운 생각이 든다"며 "밤에 잠도 못 자고 마당에 나와 있을 때가 많다"고 했다.

구모(71)씨는 남편이 포격으로 인해 고막을 다쳐 한쪽 귀가 안 들린다고 전했다.

구씨는 "지금도 가방에 짐을 싸놓고 잠자리에 든다"며 "불안한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오후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이날까지 연평도에서 포착된 북한의 특이 동향은 없었다.

군 당국 관계자는 "북한 포진지는 계속 문이 닫힌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24시간 경계 태세를 유지하면서 북측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이후 연평도에 불어온 평화의 바람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고 있었다.

연평초등학교 6학년생인 홍원기(12)군은 해병대 연평부대에서 복무 중인 아버지를 따라 3년 전 연평도로 왔다.

홍군은 "지금의 평화로운 연평도를 보면 과거 포격 사태를 전혀 상상할 수 없다"면서도 "(포격 흔적이 남아있는) 안보교육장을 가보면 그날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 무섭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가 군인인데 북한이 도발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