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겹겹규제 포비아에...기업, 설비투자 30%↓ 현금 55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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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상반기 기업의 설비투자가 작년에 비해 30%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설비를 들이기 위한 씀씀이를 줄이는 동시에 현금을 비축한 영향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영 환경이 말 그대로 '시계 제로'인 상황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비롯한 정부 규제도 중장기 투자를 옥죄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리는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쳤지만 투자 진작으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한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이자도 못버는 기업들, 투자 '언감생심'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시설투자와 유형자산 취득을 공시한 기업은 51곳으로 투자금액은 4조4281억원이었다. 작년 상반기(6조2715억원)에 비해 29.3% 줄어든 규모다. 올해의 경우 지난해 보였던 '조(兆) 단위' 투자가 실종됐다. 올해 가장 규모가 컸던 투자 공시는 SK D&D의 오피스빌딩 '영시티'를 5450억원 매입 건이었다. 설비투자가 아닌 단순 부동산 매입 거래였다.
코로나19 충격으로 기업은 매출 급감에 따른 현금흐름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 1분기 운수업(59.69%)과 석유·화학업(-114.12%), 음식·숙박업(-116.3%) 등의 이자보상비율이 100%를 밑돌았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100%를 밑돌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마이너스면 영업손실을 냈다는 뜻이다. 돈이 돌지 않는 상황에서 신규 설비투자는 언감생심이다. 기업들의 보유 현금은 불었다. 현금성자산(M2·계절조정계열 기준)은 4월 말 기준 851조1429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소비·수출이 위축되는 와중에 기업 설비투자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중장기 투자 옥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정부·여당이 내놓은 기업 규제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자 기업들은 경영에 압박을 주는 공정거래법·상법 개정안 입법이 한층 급물살을 탈 것으로 우려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위원이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박 의원 개정안에는 지주회사 부채비율을 현행 200%에서 100%로 낮추고, 상장 계열사 보유지분을 현행 20%에서 30%로 끌어올리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법안이 시행되면 기업은 부채비율 하락과 계열사 지분을 추가 매입을 위해 상당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태영건설은 지난 4월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지주사가 자회사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할 것을 요구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 지주사들은 자회사 지분 추가 취득을 위해 추가비용이 들고 재무구조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신규사업 개발과 자회사 재무지원 등 적극적인 투자활동은 위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 일가 지분율 30% 이상 대기업 상장사’에서 ‘20% 이상 상장사’로 확대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기업이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내부거래를 줄이거나 총수 일가 지분율을 낮추는 것이다. 기업들은 공정거래위원화가 규제하는 '내부거래' 기준이 불분명한 만큼 결국 총수 지분의 매각을 유도한 법안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는 이 규제를 적용받는 기업이 행동주의 투자자의 표적 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입을 염두에 두고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용과 설비투자를 위해 사용될 내부자금이 경영권 방어 자금으로 쓰인다는 지적이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한국판 뉴딜' 등을 추진하는 정부가 투자 계획을 주도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투자는 재정부담을 늘리면 구축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규제를 개혁하고 시장이 잘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영 환경이 말 그대로 '시계 제로'인 상황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비롯한 정부 규제도 중장기 투자를 옥죄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리는 등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쳤지만 투자 진작으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한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이자도 못버는 기업들, 투자 '언감생심'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시설투자와 유형자산 취득을 공시한 기업은 51곳으로 투자금액은 4조4281억원이었다. 작년 상반기(6조2715억원)에 비해 29.3% 줄어든 규모다. 올해의 경우 지난해 보였던 '조(兆) 단위' 투자가 실종됐다. 올해 가장 규모가 컸던 투자 공시는 SK D&D의 오피스빌딩 '영시티'를 5450억원 매입 건이었다. 설비투자가 아닌 단순 부동산 매입 거래였다.
코로나19 충격으로 기업은 매출 급감에 따른 현금흐름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 1분기 운수업(59.69%)과 석유·화학업(-114.12%), 음식·숙박업(-116.3%) 등의 이자보상비율이 100%를 밑돌았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100%를 밑돌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마이너스면 영업손실을 냈다는 뜻이다. 돈이 돌지 않는 상황에서 신규 설비투자는 언감생심이다. 기업들의 보유 현금은 불었다. 현금성자산(M2·계절조정계열 기준)은 4월 말 기준 851조1429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소비·수출이 위축되는 와중에 기업 설비투자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중장기 투자 옥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정부·여당이 내놓은 기업 규제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자 기업들은 경영에 압박을 주는 공정거래법·상법 개정안 입법이 한층 급물살을 탈 것으로 우려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위원이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박 의원 개정안에는 지주회사 부채비율을 현행 200%에서 100%로 낮추고, 상장 계열사 보유지분을 현행 20%에서 30%로 끌어올리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법안이 시행되면 기업은 부채비율 하락과 계열사 지분을 추가 매입을 위해 상당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태영건설은 지난 4월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지주사가 자회사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할 것을 요구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 지주사들은 자회사 지분 추가 취득을 위해 추가비용이 들고 재무구조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신규사업 개발과 자회사 재무지원 등 적극적인 투자활동은 위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 일가 지분율 30% 이상 대기업 상장사’에서 ‘20% 이상 상장사’로 확대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기업이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내부거래를 줄이거나 총수 일가 지분율을 낮추는 것이다. 기업들은 공정거래위원화가 규제하는 '내부거래' 기준이 불분명한 만큼 결국 총수 지분의 매각을 유도한 법안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는 이 규제를 적용받는 기업이 행동주의 투자자의 표적 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입을 염두에 두고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용과 설비투자를 위해 사용될 내부자금이 경영권 방어 자금으로 쓰인다는 지적이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한국판 뉴딜' 등을 추진하는 정부가 투자 계획을 주도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투자는 재정부담을 늘리면 구축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규제를 개혁하고 시장이 잘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