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토종의 한국적 가치

최양희 < 서울대 AI위원회 위원장 yhchoi@snu.ac.kr >
고들빼기는 한국이 원산지인 자생식물로 쌉쌀한 맛도 좋지만 약용으로도 효과가 좋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자생 천연식물을 발굴해 화장품이나 약 원료로 쓰면 재배 농가와 기업에 모두 도움이 된다. 따라서 토종 식물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경쟁이 세계적으로 치열하다.

토종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에는 비단 식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식물, 언어, 문화, 관습에도 토종이 있으며 기업도 뿌리를 우리나라에 둔 토종 기업이 있다. 고라니, 꺽지, 크낙새, 어름치가 한국 토종 동물이다. 병꽃나무, 개나리, 오동나무 역시 대표적인 토종 나무들이다. 온돌, 김치, K팝, 뽀로로는 대한민국의 대표 토종 문화인데, 외국에서도 관심이 증폭돼 이제는 글로벌 문화 아이콘이 됐다. 네이버는 토종 검색엔진이며 마켓컬리, 카카오는 대표적으로 성공한 토종 기업이다.토종 기업이 규모가 커지면 외국으로 진출하거나 외국 기업과 협력하게 된다. 이 고비를 잘 넘기고 성공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경우의 차이는 대부분 토종의 가치와 글로벌 가치의 차이를 정합하는 디테일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 토종 기업이 투명성과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에 진출하려면 정(情), 상명하복과 같은 유교적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영방식, 인사시스템, 구매 관행을 그대로 가져가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많다.

우리 토종 기업 중에서 외국으로 본사를 성공적으로 옮긴 경우는 아주 적은데 대개 과거의 방식, 즉 토종 방식을 고집해 생긴 현상이라고 본다. 고급 인력이 많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연봉 수준이 몇 배 높고, 인력의 유동성도 매우 크다. 따라서 경비 절감을 꾀하거나 기술유출을 두려워한다면 이런 환경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외국의 토종이 한국에서 어떻게 성공하는가를 살피는 것도 흥미롭다. 가시박, 황소개구리와 같이 탁월한 번식력으로 한국의 자연생태계를 교란하고 장악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한국의 산하에 맞도록 진화해 살아남는 방식을 택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제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이 높으면 본사의 운영 매뉴얼을 그대로 가져와도 시장에 안착하지만 대개는 한국적 가치에 순응하며 성공을 꾀한다.

이들이 한국적 가치라고 흔히 꼽고 있는 가족애, 계급 중시, 집단 우선주의가 한국의 특징이자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진단이 부정확하다는 것이 요즈음의 정설이다. 오히려 지금은 높은 시민의식, 자발적 민주주의, 과학기술이 한국적 가치의 핵심이며 한국 사회 발전의 기반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적 가치의 새로운 발견과 해석은 우리 토종의 글로벌화와 외국 토종의 한국행을 동시에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