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 벤처캐피털 허용한다면서 손발은 다 묶겠다니

정부 여당이 대기업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보유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공정위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서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총수 일가가 사익을 편취하거나 편법적으로 경영 승계하는 데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금산분리 문제를 들어 반대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주무부처인 공정위가 부정적 입장을 밝힘에 따라 대기업 지주사의 CVC 보유는 설사 허용되더라도 엄격한 요건하에서 극히 제한적으로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그동안 경제계와 벤처업계에서는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하려면 대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을 꾸준히 해왔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CVC 설립에 대한 규제가 따로 없다. 이에 따라 구글 인텔 등 대기업들은 CVC를 통한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스타트업을 대기업에 매각할 기회가 열려 있으면 벤처 창업은 그만큼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 여당이 코로나 위기를 맞아 CVC 관련 규제를 풀려고 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도 공정위가 해묵은 반(反)대기업 논리를 들고 나와 제동을 거는 것은 유감이다. 요즘처럼 대기업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촘촘히 이뤄진 때도 없었다. 공정위가 우려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대기업의 CVC 보유가 허용되더라도 보유 지분과 자금조달 및 투자처를 일정 범위 내로 제한하고 다른 금융업 겸영 금지를 명시화하는 등 각종 규제를 통해 진입 장벽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될 경우 대기업의 CVC 보유는 유명무실해진다. 공정위는 “CVC를 선악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금산분리가 필요했던 과거 상황과 현재에 대한 면밀한 비교가 필요하다”는 민주당 이광재 의원의 말을 되새겨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