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유통업계 뒤집어 놓고…언론·기업만 탓한 환경부

현장에서

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기자가 ‘재포장 금지법’ 얘기를 처음 들은 건 올초였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포장 규제를 세게 한다는데 들리는 게 하나도 없다”며 불안해했다. 6개월이 지나 재포장 금지법 시행일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야 환경부는 업계 관계자를 불러모았다. 간담회를 다녀온 한 참석자는 “앞으로 할인도 못 하고 사은품·증정품도 못 붙여 팔게 됐다”며 “채널별로 기준이 달라 골치 아프게 됐다”고 했다.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환경부가 제시한 ‘재포장 금지 예시 사진’을 전해 받았다. 주요 유통회사와 20여 곳 식품회사 등 회의 참석자 전원을 취재했다. 이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앞으로 ‘묶음 할인’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과대포장 문제는 업계 일각에서도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얘기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문제는 소통 방식이었다. 정부가 규제해도 업계는 다른 살 방법을 찾겠지만 어쨌거나 시장이 납득할 방식으로 규제 방안을 찾는 게 순서다. 그러나 환경부는 시장과 소통도 공감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포장과 재포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영세업체와 중소기업을 찾아갔다. 패키징 회사 대표들은 본지 취재 과정을 통해 법 집행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한국패키징단체총연합회도 “회원사 대부분이 알지 못했고, 환경부와는 전화 통화 한 번 한 적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9개월 정도 쓸 포장재를 만들어놨는데 쓰지도 못하고 버려야 할 처지가 됐다”며 “성급한 법 도입에 도산하는 회사도 속출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환경부 한 사무관은 재포장 금지법에 따라 업계가 큰 혼란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나간 19일 오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한쪽 이야기만 듣고 기사를 썼다”고 항의했다. “우리가 언제 할인을 못 하게 했냐”며 전하기 힘든 표현까지 입에 담았다. “어느 기업의 얘기를 듣고 그런 기사를 썼는지 다 안다”고도 했다. 환경부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데 대해 적잖게 당황한 분위기였다.

환경부는 본지 보도가 나간 뒤 19일과 20일 두 차례 설명자료를 내고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그동안 업계 간담회에서 밝혔던 내용과는 다른 입장을 내놓고, 한경 등 언론이 제기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팩트체크 형식으로 반박했다. 마치 환경부는 처음부터 그런 방향으로 규제를 개선하려 했다는 것처럼.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든, 언론 보도 후 생각을 바꿨든 중요하지 않다. 말도 안되는 규제가 백지화된 게 다행스러울 뿐”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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