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회고록]트럼프, 하노이회담 보름 전부터 '노딜' 염두에 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2월27~28일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보름 전쯤부터 '노딜(협상 결렬)'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3일(현지시간) 출간될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이같이 밝혔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 사진=로이터
볼턴 회고록에 따르면 하노이 회담 준비를 위한 백악관 내 첫 브리핑은 2019년 2월12일 열렸다. 볼턴팀은 트럼프에게 영상 한 편을 보여줬다. 카터·클린턴·부시·오바마 전 대통령이 북한과 위대한 딜을 이뤘다고 말하는 뉴스로 시작해,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한의 실제 행동과 북한이 실제로 미국을 어떻게 속였는지로 넘어가는 영상였다. 영상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6년 고르바체프와 레이캬비크 회담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끝났다. 레이건의 요지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마지못해 동의하는 것보다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토론이 끝난 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하노이에 가져갈 핵심 요지를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레버리지를 갖고 있다", "나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나는 (협상장을)박차고 나갈 수 있다(I could walk away)". 첫번째 브리핑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 속에 '노딜' 시나리오가 자리를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후 트럼프 2월19일 볼턴, 폼페이오 국무장관,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 앨리슨 후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과의 회의에서 "우리가 (협상장을)박차고 나간다면, 그건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건에게 "그들(북한)에게 내가 얼마나 김 위원장을 좋아하는지뿐만 아니라, 내가 원하는게 뭔지도 함께 말하라"고 지시했다. 이날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한 날이었다. 2월27일 하노이 회담 시작 전 볼턴과 폼페이오 장관 등이 보고하러 갔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의 세가지 가능한 결과로, 빅딜, 스몰딜, "걸어나오기(I walk)"를 들었다. 그러면서 "그(트럼프)는 스몰딜은 제재 약화를 의미할 수 있다는 이유로 즉각 거부했다. 빅딜은 김정은이 핵포기 선언을 위한 전략적 결정을 기꺼이 내리려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결국)"걸어나간다"는 생각이 반복해서 떠올랐다"고 볼턴은 적었다. 이어 "이는 트럼프가 적어도 그에 대해 준비가 돼 있거나, 혹은 심지어 그걸 더 선호할 수 있다는걸 의미했다"고 썼다.

이후 27~28일 이뤄진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2016년 이후 부과된 핵심 유엔 제재를 모두 해제하는 딜을 제안했다. 트럼프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영변외 추가로 더 내놓을 것이 없는지 계속해서 물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플랜B'를 내놓지 않았고 결국 회담은 결렬됐다.

하노이 회담 당시 한국 정부는 노딜을 예상하지 못했다. 회담 결렬 직전까지도 어떤 형태로든 딜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감에 들뜬 분위기였다. 볼턴 회고록에 비춰보면 한국 정부가 백악관 분위기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