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비워달래요"…재건축 2년 거주 날벼락, 세입자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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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거주해야 분양권 받아“재건축 단지에 대한 2년 실거주 요건이 생기면서 세입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재건축은 그나마 전셋값이 싼 편이었는데, 이제 전세 물량 자체가 없어질까 걱정입니다.”(대치동 은마아파트 세입자)
대치은마·성산시영 집주인들
"들어가 살겠다" 매물 거둬들여
"학군 좋고 전셋값 저렴했는데…"
전세 씨마르고 가격 상승 우려
국토부, 임대사업자만 예외 검토
해외·지방 소유자 구제 힘들 듯
정부가 지난 17일 내놓은 부동산 대책에서 재건축 조합원이 2년 실거주를 해야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게 하면서 전세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당장 전세 기간이 만료되는 세입자에게 “집을 비워 달라”고 통보하는 집주인이 잇따를 조짐이다. 요건을 맞추기 위해 실제 입주하거나 빈집에 전입신고만 하는 꼼수를 쓰기 위해서다.갈 곳 잃은 전세 세입자
정부의 ‘6·17 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의 재건축 아파트에서 2년 이상 거주한 조합원에게만 분양 신청을 허용하기로 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개정되는 올해 말까지 조합설립 인가 신청을 하지 못한 단지가 대상이다. 요건을 채우지 못한 조합원은 새 아파트를 받지 못하고 현금청산을 받아야 한다. 조합원은 재건축 아파트를 팔지 않는 한 무리를 해서라도 실거주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년 실거주 요건에 해당할 초기 재건축 아파트는 전국 100개 단지(약 8만 가구)에 달한다. 대표적인 강남 재건축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강북 최대 재건축 단지인 마포구 성산시영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재건축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낮아 세입자의 선호도가 높았다. 주차 등 실거주 환경이 열악하다고 하지만 은마 전세는 학군을 위해 대치동에 들어가려는 세입자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현재 은마 전용면적 77㎡의 매매 시세는 19억원 정도인데 전셋값은 5억3000만원 정도로, 전세가율이 28% 정도에 그친다. KB부동산 기준 지난달 서울 전체의 전세가율 54.8%보다 크게 낮다.
반대로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2년 동안 세입자를 받지 않고 빈집으로 둔 채 가끔 왕래하면서 2년 거주 요건을 채우는 게 큰 무리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세입자가 살 수 있는 전세 매물이 줄어드는 게 불가피하다.대치동 A공인 관계자는 “은마 등 재건축 소유주 사이에서 전세를 준 집에 직접 살겠다는 뜻을 밝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물량이 줄면서 전세 가격도 강세를 보일 조짐”이라고 말했다. 성산시영 세입자 B씨는 “곧 전세 계약 만기가 다가오는데 집주인이 2년 실거주 요건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연장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이번 대책으로 세입자들이 갈 곳이 없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해외 및 지방 거주자 예외 안 될 듯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재건축 2년 이상 거주 요건 정책안에 대한 개선 요청’ 등 대책 개선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한 청원인은 “직장과 자녀 교육 등 이유로 지방에 전세로 살고 있지만 자녀의 대학 진학 시기 등을 염두에 두고 서울 재건축을 매입한 1주택자”라며 “한동안 서울로 이사할 수 없어 아파트를 강제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그러나 국토교통부는 해외 및 지방에 거주하는 재건축 소유주에 대한 예외 적용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재건축 완료까지는 통산 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해외 및 지방 거주자도 2년 실거주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본다”며 “대책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예외 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민원에 떠밀려 성급하게 예외 규정을 두지는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다.
다만 임대사업자에 대해 예외 규정을 둬야 한다는 것엔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권유로 임대사업을 한 소유주가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문제라는 인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사업자의 잔여 임대 기간 등 구체적인 현황 조사를 거쳐 규정 적용의 예외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외 규정은 관련 도정법 개정이 이뤄지는 연말께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구입한 게 아니라면 임대사업자는 물론이고 직장 등을 이유로 해외나 지방에 거주하는 재건축 소유주도 구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무리한 규제가 재건축 가격을 잡겠다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애먼 세입자들만 괴롭힐 것으로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정연일/장현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