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나 사이에 생겨난 말들 널빤지 대듯 단순하게 써냈죠"

7번째 시집 '줄무늬를…' 낸 서정시인 박형준
“시를 쓰면서 특별히 뭔가를 의식하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내 안에 배어들기 시작한 ‘단순함’에 대해 성찰했습니다.”

박형준 시인(54·사진)은 23일 자신의 일곱 번째 시집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창비)을 펴내며 가장 깊이 생각한 것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2013년 《불탄 집》 이후 7년 만에 시집을 낸 그는 “그동안 기성세대로서 갖춰나가야 할 것들을 현실적으로 마련해야 했다”며 “그 가운데 ‘단순함’이란 감정이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1991년 등단해 내년 등단 30주년을 맞는 박 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전통을 가장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다는 평가를 받는 중견 시인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암담한 삶에 꿈을 불어넣으며 아픈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위로의 노래를 들려준다. ‘저녁나절’이란 시에 등장하는 ‘슬픔도 환할 수 있다는 걸/아무도 없는데 환한/저녁나절의 반지하집은 말해주었지’라는 시구는 가슴을 저미는 쓸쓸한 풍경 속에서 삶의 숨소리가 들리는 느낌을 전한다. “산책하다 보면 낯선 길이나 사물, 작은 동물들과 만나게 되는데 그때 어떤 기억이나 상상이 일체가 되는 순간이 찾아와요. 그렇게 불현듯 나타나는 갈망이나 그리움이 실제 풍경과 하나가 되는 방식에 대한 생각이 시로 표현되는 거죠.”

그의 시는 맑고 고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시집에서도 소중한 기억들을 찬찬히 더듬고 성찰하는 산책자의 명상록 같은 느낌을 받는다. ‘토끼의 서성거림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언제부턴가 삶에서 서성거림이 사라졌다’는 상념에 젖다가도 서럽고 눈물겨운 동네 변두리의 삶도 ‘가볍게 발바닥으로 풀잎처럼 들어올리는 세상이 있다는 것’(동네 천변을 매일)을 조용히 깨닫는다. “처음엔 시집 제목을 ‘서성거림과 강물 사이’라고 지으려 했어요. 강물을 바라보는 것은 편안하지만 그 안엔 서성거림과 불안, 슬픔이 있죠. 모든 시에 뜻을 둔 게 아니라 그냥 느끼는 대로 사물과 나 사이에 생겨나는 말들을 어떤 널빤지를 대듯 단순하게 써보고 싶었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