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에 눈 뜬 WASP…미국 변화 이끄나

플로이드 사태 후 "이게 나라냐" 행태 변화
책 사보고 남부기 지우지만 사회변혁 미지수
미국 백인들이 인종차별 반대시위의 확산과 함께 과거와 다른 행태를 일부 보이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들어 흑인 차별의 상징물을 지우고 차별 반대시위에 참여하며 인종평등을 학습하거나 자녀에게 교육하는 백인들이 늘어났다.

와스프(WASP·백인 앵글로색슨 미국 신교도)로 대변되는 미국 백인들의 이런 행보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뒤 가시화했다.

1955년 백인들에게 살해돼 흑인 민권운동을 촉발한 엠메트 틸을 기리는 미시시피주 섬너의 박물관에는 평소보다 10배 많은 관람객이 들고 있다. 흑인민권 서적을 파는 플로리다주 보인턴의 책방은 본인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백인들의 주문이 멀리 캘리포니아주, 메인주에서도 쇄도해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문신 시술소에서는 흑인차별의 상징물로 지목되는 남부연합기를 가리려는 시술을 받으러오는 백인들 덕분에 장사가 잘되고 있다.

이런 추세의 배경에는 플로이드 사태뿐만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경기침체, 정부의 부실대응 논란도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에모리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연구하는 캐럴 앤더슨 교수는 "이 모든 것이 현시점에 한데 모여 미국인들, 특히 백인들이 미국을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앤더슨 교수는 "도대체 미국이 어떤 종류의 나라이기에 경찰(백인경관)이 어떤 사람(플로이드)의 목을 8분46초 동안 무릎으로 누르는데도 예사로울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NYT는 많은 미국인이 흑인차별이 미국에 만연했다는 점을 각성하고 흑인들을 집단으로 무시한 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백인들이 각성은 하고 있지만 차별 해소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당황스러워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피상적으로 나타나는 행태 변화가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해소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인종주의 반대론자들은 상징물이나 차별적인 욕설 따위가 아니라 미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전체 체계가 진짜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공공종교연구소의 작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참여자 5명 중 1명은 다른 인종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같은 연구소의 2013년 설문에서는 최근 6개월간 중요한 사안을 의논한 사람 7명의 인종을 대라는 문항에 백인들의 75%가 백인만 적었다. 미국 웰즐리대의 사회학자인 제니퍼 추디는 "많은 백인이 인종평등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는 쪽으로 주거지, 자녀 학교, 휴가지, 일자리를 선택한다"고 현실을 적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