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최고 석학' 삼고초려…삼성의 미래 맡긴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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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 승 美프린스턴대 교수2008년 6월 3일 제18회 호암상 시상식이 열린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 세바스찬 승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사진)가 ‘호암상 공학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전무가 박수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매년 시상식을 챙겼던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이 전무가 주최 측 대표로 참석한 것이다. 이 전무와 승 교수는 수상자 축하연에서 인사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리서치 소장으로 발탁
李부회장, 승 교수와 12년 인연
캐나다까지 찾아가 "함께하자"
13개國의 R&D·AI센터 맡겨
10년 뒤인 2018년 6월 4일.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분야 권위자인 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삼성리서치에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승 교수는 그동안 삼성리서치 부소장으로 삼성전자의 AI 전략 수립과 선행연구 자문 역할을 맡았다. 세계적인 석학 반열에 오른 승 교수 영입은 삼성전자 사령탑을 맡은 이재용 부회장이 진두지휘했다. 2018년 3월 경영 복귀 이후 첫 출장 일정에 캐나다를 넣은 이 부회장은 현지에서 승 교수를 만나 “함께 일하자”고 권유했다. 승 교수는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흔쾌히 수락했다.이재용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직접 영입
2년이 지난 24일, 이 부회장과 승 교수의 인연은 더욱 깊어졌다. 삼성전자는 이날 “승 교수를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에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을 포함해 13개국 15개 연구개발(R&D)센터와 7개 AI센터의 미래 신기술 및 융복합 기술 연구를 관장하는 ‘총책임자’로 올라선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에서 사장급 인사는 승 사장을 포함해 18명에 불과하다”며 “외부 출신 인사가 사장에 임명된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승 사장의 파격 승진은 AI 기술을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이 부회장이 그의 역량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196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승 사장은 하버드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벨랩, MIT, 프린스턴대 등 유명 연구기관·대학에서 근무하며 ‘뇌 기반 AI 연구’를 개척한 세계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 등 유수 언론이 AI 관련 기고자를 찾을 때 ‘1순위’로 꼽히는 게 승 사장이란 얘기도 나온다.지난 2년간 삼성리서치에서 일하며 눈부신 성과를 낸 것도 승진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 기조연설이 승 사장의 기여도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김현석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부문 대표(사장)가 AI와 로봇 기술이 적용된 테니스공 모양의 로봇 ‘볼리’를 공개했고 뒤이어 승 당시 부사장이 연단에 올라 ‘AI와 건강한 삶’을 주제로 강연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승 사장에 대해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에 조직과도 잘 융화되는 사람이란 평가가 많다”며 “이번에 사장을 맡길 때도 이 부회장이 직접 움직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AI 사업에 가속도
삼성전자는 승 사장 임명을 계기로 이 부회장이 진두지휘하는 AI 사업에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AI 인재 영입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도 지난 5월 ‘뉴 삼성 비전’을 발표하며 ‘외부의 유능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당시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며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유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리서치 AI센터, 삼성종합기술원 AI&SW연구센터 등 선행 연구 조직의 위상도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두 조직은 구글 수석엔지니어 출신인 김찬우·임근희 연구위원 등 AI에 특화된 10명 이상의 임원급 박사가 신기술·서비스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삼성전자 미래기술 투자 조직인 삼성캐탈리스트펀드와 삼성넥스트는 보사노바, 하바나, 브로드만, 플로이드 등 총 18개 AI 관련 스타트업에 지분투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에서 글로벌 인재 발굴과 사업 확장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부회장”이라며 “이 부회장에 대한 무리한 기소는 경영 공백으로 이어져 삼성의 미래 성장 가능성 자체를 꺾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송형석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