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구진 일냈다…더 작고 빠른 반도체 핵심 신소재 발견

UNIST 신현석 교수팀, '비정질 질화붕소' 개발
"반도체 내부 전기 간섭 최소화 가능"
비정질 질화붕소 분자 구조(왼쪽)와 실리콘 기판 위에 비정질 질화붕소 박막이 형성되는 모습 [자료=UNIST 제공]
한국 연구진이 반도체를 더 작게 만들 수 있는 핵심 신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신현석 자연과학부 교수팀과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원장 황성우)의 신현진 전문연구원팀, 기초과학연구원(IBS)을 포함하는 국제 공동 연구진이 반도체 집적회로(Integrated Chip, IC칩)에 사용될 수 있는 '초저유전율 절연체'를 개발했다고 25일 밝혔다.반도체 소자는 실리콘 같은 반도체, 금속, 절연체 등으로 구성되는데 집적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단위 소자(회로) 등을 더 작게 만드는 기술과 함께 작아질수록 증가하는 전기간섭 영향 등을 줄일 수 있는 우수 절연체가 필요하다.

특히 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의 반도체 공정에서는 내부 전기간섭이 심해져 정보처리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전기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초저유전율 신소재 개발이 반도체 소형화 한계를 극복할 핵심으로 꼽혀왔다.

유전율은 절연체가 외부 전기장에 반응하는 민감도를 의미한다. 유전율이 낮으면 전기적 간섭이 줄어들어 반도체 소자 내 금속 배선의 간격을 줄일 수 있어 반도체를 더 작게 만들 수 있다.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유전율이 1.78로 현재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절연체인 '다공성 유기규산염'(p-SiCOH. 유전율 2.5)보다 훨씬 낮은 '비정질 질화붕소(a-BN : amorphous boron nitride) 소재'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질화붕소는 그동안 널리 연구돼온 소재로 규칙적인 결정구조를 가진 육방정계 질화붕소(h-BN)는 '화이트 그래핀'으로 불리며 절연체로 사용되고 있다. 원자 배치가 불규칙한 비정질 질화붕소도 1960년대부터 연구돼 왔으나 유전율이 3~6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육방정계 질화붕소가 기판에 증착되는지 연구하던 중 우연히 '비정질 질화붕소'의 우수한 유전율 특성을 발견하고, 반도체 절연체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다.현재의 반도체 공정 조건에서 플라스마를 도입한 화학기상증착법으로 반도체에 사용되는 기판에 3㎚ 두께의 비정질 질화붕소 박막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제작한 비정질 질화붕소는 기존에 보고된 a-BN보다 결정성이 더 낮았고, 전기소자(커패시터)를 만들어 유전율을 측정한 결과 1.78(100㎑ 교류전류 주파수)과 1.16(1㎒ 교류전류 주파수)으로 측정됐다.
집적회로는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저항, 커패시터 등 전자부품들을 정밀하게 만들어 작은 반도체 속에 하나의 전자회로로 구성해 집어넣은 것으로 작아질수록 전기 간섭을 적게 받는 초저유전율 절연체가 필요하다. [자료=UNIST 제공]
연구팀은 유전율이 낮은 이유가 '원자 배열의 불규칙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a-BN을 구성하는 원자 배열이 불규칙해 주변에 전기가 흐를 때 형성되는 내부 분극 현상이 상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또 기존에는 유전율을 낮추기 위해 소재 안에 미세한 공기 구멍을 넣어 강도가 약해지는 문제가 있었으나 a-BN은 물질 자체의 유전율이 낮아 이런 작업 없이도 높은 기계적 강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신현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전문연구원은 "이번 연구결과는 학계와 산업계의 상호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신현석 UNIST 교수는 "이 물질이 상용화된다면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일본의 수출 규제 등 반도체 산업에 닥친 위기를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반도체 초격자 전략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될 소재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