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일대일로 '고리대금업' 전락…참여국들 빚더미에 앉았다

'부채의 덫'에 빠진 참여국
부채 탕감 요구 목소리 커져
한국에도 공공연하게 참여 압박
동유럽 소국 몬테네그로는 중국 정부의 집요한 요청에 따라 2014년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일환으로 아드리아해와 세르비아 사이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하고 중국으로부터 7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를 빌렸다. 경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유럽연합(EU)에 가입하겠다는 목표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최근 중단됐다.

일대일로에 참여한 뒤 국내총생산(GDP)의 60% 수준이었던 몬테네그로의 공공 부채는 80%까지 치솟았다. 중국에 대한 부채 비율은 8%에서 46%로 뛰었다. 올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환율이 출렁이면서 중국에 상환해야 할 빚은 20%가까이 늘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몽(中國夢: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이 ‘고리대금업’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사업이 중단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코로나19 충격까지 겹쳐 참여국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시 주석이 처음 꺼내든 일대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등을 육상과 해상으로 연결해 거대한 경제벨트를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참여 국가에 도로와 철도,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세계 78개국에서 일대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사업구조가 중국에만 유리할뿐 참여국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대일로는 중국 국유은행의 자금으로 중국 국유기업이 수주받아 중국 자재와 노동력을 이용해 SOC를 건설한 뒤 공사 대금만 해당 국가에 떠넘기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중국이 빌려준 자금은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높고 만기도 짧아 2년 마다 차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자국 기간시설을 담보로 잡히는 참여국이 많다.독일 싱크탱크 키엘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대일로 참여국의 대(對)중국 부채는 3800억달러(약 457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세계은행(WB)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이 개발도상국에 빌려준 자금보다 많은 규모다. 키엘연구소는 “일대일로의 ‘약탈적’ 사업구조 탓에 참여국은 ‘부채의 덫’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에 진 빚 때문에 파산 위기에 처한 국가로 앙골라,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와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아시아 소국, 세계 최빈국들이 몰려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꼽고 있다.

이들 국가는 최근 중국에 빚을 탕감하거나 채무 상환 기한을 늦춰달라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채무국을 개별적으로 상대하길 원하지만, 채무국 지도자들은 연합전선을 펴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중국으로선 이들 국가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니 국민적 분노를 살 수 있고 거부하면 반(反)중 감정이 커져 국가 비전인 글로벌 영향력 확대가 차질을 빚을 수 있어 진퇴양난에 몰린 형국이다.

마지 못해 중국은 우선 아프리카 국가들의 채무 상환을 일부 면제해주기로 했다. 시 주석은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방제 협력 특별 정상회의’를 통해 “올해 말까지 만기가 되는 아프리카 국가의 대중국 무이자 차관을 면제하고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국가에 대해선 채무 상환 유예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아프리카 국가가 중국에서 빌린 자금은 1450억달러에 이른다.중국은 한국에도 일대일로 참여를 공공연하게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시 주석이 장하성 주중대사의 신임장을 받을 때 중국 관영 언론들은 한국이 일대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앞서 작년 3월 이낙연 총리와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회담 때도 중국 정부는 이 총리가 리 총리에게 “일대일로 공동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반박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 추진하는 일대일로가 참여국에는 ‘악몽’이 되고 있다”면서 향후 중국의 거센 참여 요구를 받게 될 한국도 각별한 경계심을 갖고 전략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