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8세기 들어서야 만들어진 '나만의 방'

18세기의 방

민은경·정병설·이혜수 외 지음
문학동네 / 440쪽│2만5000원
침실, 서재, 응접실, 부엌으로 분류되는 ‘방’이란 공간은 우리 삶의 기본 배경이자 무대다. 하지만 그 방들의 역사를 따져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유럽에선 17~18세기에 들어서야 방을 편안함을 추구하는 개인적 공간으로 쓰기 시작했다.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27명은 《18세기의 방》에서 방을 중심으로 18세기 동서양에 나타난 주택 구조와 인테리어의 변화를 추적하고 사생활을 구성하는 방의 의미를 여러 각도로 관찰한다.

저자들은 먼저 방을 통해 ‘개인’이 등장했고 사생활이 시작됐음을 이야기한다. 18세기 들어 침실 옆엔 개인용 벽장이 만들어졌고 사색과 독서를 즐기는 서재와 여성 전용 글쓰기 책상이 보급됐다. 17세기 이전만 해도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전시하는 무대로 활용됐던 집이 18세기 들어 기술 발전에 힘입어 사생활을 보장하는 안락한 공간으로 재정의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이 시기부터 사람들은 주인 취향대로 집을 꾸며주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했고 편안한 소파와 비밀 서랍이 갖춰진 책상이 유행했다”고 설명한다.흥미로운 대목은 18세기 방의 역사가 그 시대의 여러 다른 사회적 변화들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18세기 영국에선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대중적 사치가 증가하는 등 소비문화에 큰 변화가 생겨났다. 이 시기 중국풍 가구와 도자기, 차(茶), 인도에서 들여온 면제품, 오스만 제국의 카펫 등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식민지로 이주한 뒤 거실에서 하인들을 부리는 영국 귀족의 모습이나, 방에서 부와 유행의 전시용으로서 흑인 시동(侍童)을 애완동물처럼 부리는 그림 속에선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비친다. 민은경 한국18세기학회장은 “18세기 방은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숨길지, 누구를 들이고 누구를 차단할지 깊이 고민했던 공간”이라며 “무엇보다 18세기 방을 통해 세계를 맛보며 당시 전 지구적 문화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