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마일 달성의 꿈…항공사 마일리지는 왜 '선망의 가치'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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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1000만 마일은 지금껏 여섯 명만 달성했어. 달에 간 사람도 그보단 많다고.”
1년 중 322일을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라이언은 ‘1000만 마일’을 달성하는 게 유일한 목표다. 마일리지는 거리 단위인 ‘마일’의 수를 뜻한다. 영화 ‘인 디 에어’의 배경이 되는 항공사인 미국 아메리칸항공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대단한 일’이던 시절, 자사 항공편을 계속해서 탑승해달라는 목적에서 시작했다. 이제는 항공사는 물론 동네 PC방에서도 자사의 포인트 제도를 ‘마일리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적립금, 포인트와 동의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라이언은 남들이 체크인 카운터 앞에 긴 줄을 설 때 사람 한 명 없는 우수회원 전용 카운터로 직행한다. 항공사의 멤버십 포인트일 뿐인 마일리지 제도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이유는 이런 ‘희소성’에 있다.‘희소성의 원리’는 어떤 재화의 공급량이 한정돼 있을 때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격이 더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우수회원이 되면 우선 체크인, 항공기 우선 탑승, 수하물 우선 처리 등 ‘우선’의 자격이 주어진다. 라이언은 마일리지 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탈리에게 “난 마일리지 적립이 안 되는 일엔 가능한 한 돈을 안 써”라고 말한다. 라이언은 모든 걸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신용카드로만 결제한다. 결제 시 1000원당 1마일리지를 주는 신용카드가 보편화되며 국내에서도 비행기 한 번 안 타고 마일리지를 쌓는 일이 흔해졌다. 자연스레 항공 마일리지의 희소성도 크게 떨어졌다.
항공 마일리지가 흔해지다 보니 마일리지를 카드사 등에 판매해 항공사들이 벌어들이는 수익도 막대해졌다. <그래프>는 세계 주요 항공사의 마일리지 프로그램 수익을 보여준다. 소비자들이 마일리지를 쓰는 빈도가 높아지자 항공사들은 소비자에게 불리하도록 마일리지 사용 제도를 ‘개악’하기도 한다. 최근 대한항공은 장거리 국제선 항공권의 마일리지 구매 가격을 최대 60%까지 올리는 개편안을 발표했다.여느 때처럼 라이언이 비행기에서 상공을 날고 있을 때 기내 안내방송이 나온다. “특별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더뷰크 상공을 지나는 이 순간 여러분 중 한 분이 1000만 마일을 달성했습니다.” 하필이면 난생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 알렉스가 유부녀인 것을 알게 돼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였다. 라이언은 이날 꿈꾸던 세계에서 일곱 번째 ‘1000만 마일러’라는 희소성 높은 자격을 얻었지만 우울했다. 정작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사랑을 갖지 못해서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