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숨겨진 보석, 동반 카르스트 고원 [인사이드 베트남]

중국과 국경 접한 오지 중의 오지, 하장~동반 라이딩 여행
17개 소수민족들의 삶 오롯이 볼 수 있는 곳
해발 1500m의 절경, 석회암 연봉들의 향연
오직 베트남에서만 가능한 여행이 있다. 약 5억 년 전 깊은 바다 속 험준한 해령(海嶺)이었을 산악 지대를 오토바이크 한 대에 의지해 질주한다. 구불구불 까마득한 벼랑길을 달리며 거대한 산봉우리들을 지나치다보면, 마치 높은 하늘 위 허공을 달리는 듯 착각마저 든다. 7월 한 여름임에도 청량한 바람이 폐 속 깊이 스며든다. 베트남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는 북부 하장(Hà Giang)성 이야기다.

하장성 여행을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몇 번의 결심과 번복을 반복해야했다. 우선 이동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하노이에서 하장까지 가려면 최소 5시간을 덜컹거리는 슬리핑 버스에서 보내야 한다. 비가 많이 오거나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7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하장성의 성도인 하장에서 해발 1400m 고원 도시인 동반(Đồng Văn)현(顯)까지 오토바이크를 타기로 한 것도 부담이 컸다. 슬리핑 버스와 오토바이크 모두 난생 처음이다. 지금껏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한다는 건 설렘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법이다. 하노이에서 출발하는 하장행 슬리핑 버스는 늦은 저녁 8시 반으로 예정돼 있었다. 버스를 타기 전까지 내 머리 속 그림은 이랬다. ‘버스 터미널에 8시쯤 넉넉하게 도착하면 되겠군’ 그런데 여행사로부터 뜻밖의 전갈이 왔다. 셔틀 버스를 이용해 집까지 데리러 오겠단다. 다시 한 번 나만의 상상을 펼치기 시작했다. ‘최고급 슬리핑 버스를 예약한 덕에 훌륭한 서비스를 받게 되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셔틀은 금요일 저녁 꽉 막힌 하노이 도심을 이리저리 헤매며 버스 탑승객 전원을 태우러 다녔다. 하노이 대형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돌아가는 아주머니, 하노이쯤은 와야 싸게 구할 수 있는 철판 무더기를 한 가득 안은 청년, 한류를 대표하는 여성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신곡 동영상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산골 소녀, 타자마자 차멀미를 한 탓에 얼굴이 창백해진 이제 갓 신혼의 여성까지, 셔틀 안은 짐과 사람으로 가득 찼다.
왕복 4만원짜리 ‘최고급’ 슬리핑 버스는 하노이 북부 외곽의 공터에 정차해 있었다. 아래, 위 2열로 좌우에 침대처럼 누울 수 있는 시트를 갖춘 대형 버스다. 좌석 길이는 1.6m쯤 돼 보였다. 좌석마다 커튼으로 칸막이를 칠 수 있어 제법 아늑한 느낌이 있다. 예상보다 2시간쯤 지난 밤 10시에 버스는 흔들흔들 하장으로 향했다. 새벽 3시경에 하장에 도착했다.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처음 타는 오토바이크인데 비까지 오면 어쩌나, 근심이 앞섰다.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오는 내내, 수십 가지 자세를 취해가며 편한 잠을 구해 봤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비몽사몽인 채로 미리 예약해 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근심 반, 설렘 반으로 일찍 눈을 떴다. 호텔방 창 밖으로 하장의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허리에 흰 구름이 따뜻한 머플러처럼 걸려 있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해를 살짝 가린 흐린 하늘이 오히려 상쾌함을 더했다. 뭔가 예감이 좋다.

오토바이크 예약은 호텔에서 전화 한 통으로 해결했다. 하장에서 꽌바(Quản Bạ), 옌민(Yên Minh)을 거쳐 동반까지 약 140km 구절양장(九折羊腸)길을 달리려면 기어를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스쿠터가 필요했다. 태어나서 처음 오토바이크 안장 위에 앉아 기어 조작법을 약 1분간 ‘학습’했다. 예행연습 따위는 없이 곧바로 실전이다. 하장은 중국에서 발원한 로강(江)이 도시 왼편을 타고 흐르는 작은 도시다. 로강은 베트남 북부를 관통해 유유히 흘러 빈푹성을 거쳐 홍강(紅江)으로 합류한다. 1979년 중국군이 국경을 넘어와 베트남 북부 도시들을 유린했을 때 하장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다. 라오까이, 랑선, 까오방 등 전략적 요충지들과 달리 하장은 베트남, 중국 양쪽에 그다지 중요치 않은 곳이었다. 무관심은 무방비나 다름없었다. 요즘의 하장은 상처와 가난을 씻어내고, 제법 부(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 1990년대 초 중국과의 국경 무역이 허용된 덕분이다. 시내 도로에선 검정색 마이바흐까지 목격됐다. 현대차의 신형 싼타페도 자주 눈에 띄었다.
전날 비가 온 탓인 지 하장을 감도는 로강의 물빛은 군청색에 가까웠다. 하장에서 꽌바현까지 가는 길 내내 로강은 V자 협곡을 따라 세차게 흘렀다. 먼 옛날 거대한 유빙(流氷)이 지나간 흔적인 듯 보였다. 협곡을 옆에 끼고 QL4번 도로를 시속 40Km로 천천히 달렸다. 아직은 평탄한 아스팔트 길이어서인 지 오토바이 라이딩에 자신감이 붙었다. 방심은 금물이거늘. 이 순간의 방심은 몇 시간 뒤 ‘영광의 상처’로 귀결되고 만다. 강가에는 이제 막 모내기가 끝난 제법 널찍한 논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하장의 평균 기온은 23도쯤이어서 이모작이 가능하다. 하장 여행 고수들은 여름철보다는 추수철이나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는 봄을 더 추천한다. 그러나 오지 여행을 하면서 시기까지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름산의 푸르름도 나름의 매력이 충분하다.

이날 첫 번째 목적지는 천국의 문으로 불리는 해발 1500m 고지에 있는 꽌바 헤븐스 게이트(Heaven’s gate)다. 세계문화유산 생태공원(Global Geopark)으로 지정된 동반 카르스트 고원의 관문격인 장소다. 꽌바, 옌민, 동반, 메오박 등 4개 현에 걸쳐 있는 카르스트 고원은 진정한 육지의 하롱으로 불릴만한 곳이다. 하롱베이에서 바닷물을 모두 빼면 아마 이 같은 지세(地勢)일 게 분명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박섬(Bac Sum)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다보면, 드디어 천국의 문을 마주하게 된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이 곳 넘어 고원 지대는 흐몽(Hmong)족의 독립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청(靑)과도 치열한 사투 끝에 독립을 얻어냈다. 하지만 프랑스의 점령은 피하지 못했는데, 프랑스군은 1939년 꽌바 헤븐스 게이트에 거대한 목조 방어시설을 건축했다고 한다. 하장에서 동반까지 이어지는 외길을 막기 위한 의도였다. 전쟁과 살육으로 얼룩졌던 과거는 피고 지는 메밀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선을 사방 어디로 던져도 끝없이 펼쳐진 뾰족한 연봉들은 인간의 욕심이 빚은 과오들을 모두 용서하는 듯 무심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장에서 꽌바 천국문의 문까지 거리는 46km다. 전체 여정의 약 3분의 1 정도를 온 셈이다. 가는 길은 시골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제법 널찍한 목조 가옥들이 강가에 드문드문 서 있다. 앞마당엔 말린 옥수수들이 쌓여 있고, 산골 아이들은 낯선 외국인의 등장에도 손을 흔들며 반겨 준다. 본격적으로 박썸 오르막길에 진입하기 전에 왼편으로 동굴 유원지 표지판이 보였다. 급할 것도 없는 여행이기에 주저 없이 들어갔다. 서유기를 테마로 동굴 공원을 조성중인 듯 했다. 베트남 관광지에 가면 어디에나 있는 관음보살상도 이제 갓 세워졌다. 외국인 관광객은 개장 이래 처음일 게 분명했다. 가파른 계단을 약 15분쯤 올라가자 산 중턱에 동굴이 나타났다. 작은 석회암 동굴이다. 베트남 중부 퐁냐께방 국립공원에 있는 거대한 동굴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겠지만, 동반 카르스트 고원이 먼 옛날 깊은 바다 속이었음을 알려주기엔 충분했다. 석회암(limestone)은 바다 생물의 유해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돌이다. 해발 1300~1500m까지 박섬 패스를 오르는 중간에 특이한 모양의 지형도 만나볼 수 있다. ‘요정의 가슴(Fairly Bosom)’이란 이름을 가진 곳이다. 언뜻 보면 경주에 있는 신라 시대 왕릉과 비슷하다. 천국의 문에서 동반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코스다. 거의 90도로 꺾어지는 나선형 길은 초보 라이더(rider)에겐 너무나 어려운 숙제였다. 급경사 길에서 기어를 바꾸랴, 핸들을 조정하랴 정신이 없다보니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장갑까지 낀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이날의 값비싼 경험 덕택에 2박4일 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니 영광의 상처라고 할 만하다. 위험 요소는 길 말고도 여러 가지였다. 하장과 각 현을 연결하는 미니 버스들과 각종 화물을 가득 실은 육중한 트럭들이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라이더들을 위협하곤 했다. 그럴 땐 비켜주는 게 상책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행 내내 구름만 잔뜩 끼었을 뿐, 비가 오지 않아 길이 미끄럽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비가 올 때 동반 카르스트 고원을 오르내리는 건 정말 아찔한 여행일 게 분명하다. 실제 이 길을 오가는 트럭들은 ‘신이 함께 하기를’이란 문구를 차 앞면에 써 놓곤 했다. 소수민족 현지 주민들이 오토바이크를 길 한 가운데 세워놓고 잡담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로 인해 일행 중 한 명이 길 한복판에 정차해 있던 주민의 오토바이크와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충돌로 인해 일행이 코피가 터질 정도였다. 다행히 양측 모두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연 이은 사고로 잔뜩 긴장한 몸을 쉬어줄 겸,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비로소 일행이 지나온 길들이 보였다. 뾰족하게 삼각뿔 모양으로 곧추 서 있는 두 개의 거대한 산봉우리 사이를 차마(車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냈다. 마치 절벽에 잔도(棧道)를 낸 것 같은 모양새다. 멀리서 보면 산봉우리마다 굵은 벨트를 두른 것 같다. 동반 카르스트 고원의 절정을 이루는 길이다. 먼 옛날엔 이 곳에 거주하는 17개 소수민족들이 하장이나 동반까지 오가며 물물교환을 했던 길이기도 하다. 특히 동반현 내 반짜이(Van Chail) 마을과 룽타우(Lung Thau) 마을을 잇는 약 5km의 길은 깎아지른 절벽이 지그재그로 이어져 탐마(Tham Ma Pass) 고도로 불린다. 말에 짐을 실어서 이 위험한 길을 지나다녔다고 하는데 이 길에서 살아남은 말들만이 좋은 씨를 남겼다고 하니 역설적으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운명을 달리 했을지 짐작이 간다. 이런 이유로 동반 카르스트 고원은 티벳의 차마(茶馬)고도를 본따 ‘베트남의 차마고도’로도 불린다.

하장에서 동반 고원까지 약 120km쯤 달리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룽꾸 기탑(Lũng Cú Flag Tower)으로 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동반현이다. 룽꾸는 다음날 가기로 한 터라 일행은 동반현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현내로 가기 전에 흐몽족의 왕성(王城)을 보기로 했다. 브엉 찡 죽(Voung Chinh Duc 1865-1947)이라는 흐멍족 리더가 프랑스 군에 마지막까지 대항하기 위해 궁을 짓고, 성벽을 둘렀다. 궁이라고 해봐야 정사각형 모양의 정원을 중심으로 집을 두르고, 뒤편에 이어 집 몇 채를 더 지은 정도다. 남아 있는 성벽도 대략 2m 높이로 둘레는 100m 남짓으로 보였다. 비록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앉음새가 워낙 견고해 지형적 이점만으로도 능히 적을 제압할 만 했다. 브엉은 19세기 말 청이 혼란한 틈을 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던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주로 아편 재배로 재력을 쌓아 인근 부족들을 누르고 동반 일대를 장악했다. 브엉 캐슬(Vuong Castle)은 지금은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관광객들을 상대로 가이드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 때 성벽을 두를 만큼 강성했던 흐몽족의 역사를 증명한다.
동반 카르스트 고원 여행의 최종 기착지는 동반 올드 타운이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어 아담한 고원 마을에 첫 발을 디뎠다. 가파른 산봉우리 사이로 움푹 파인 분지형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마을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동반의 지형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동안 내리막길을 내달리면 아늑한 분지형의 마을에 진입하게 된다. 사파(Sapa)와 여러모로 비슷하긴 한데 훨씬 덜 때가 묻은 곳 같았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저마다 다른 디자인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은 오랜만의 외국인 관광객을 봐도 누구 하나 호객 행위를 하지 않는다. 탐마 고도에서 만났던 꽃을 파는 산골 소녀들도 방긋 웃기만 할 뿐, 낯선 이방인들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앳된 얼굴에 서투른 화장까지 했으면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안쓰럽기까지 했다.

동반현은 인근 소수민족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일요일엔 큰 장이 선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동반 장날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입구 과일을 파는 곳을 시작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면 우(牛)시장까지 갖추고 있는 곳이다. 직접 키운 닭들을 양손에 들고 호객 행위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시장 한 켠에선 환전상들이 눈에 띄었다. 베트남 동화를 한 묶음씩 들고 있는 이들 옆에서 중국 위안화 다발을 현금 계산기에 반복해서 넣고 있는 여성을 발견했다. 이곳이 중국과의 국경 지대임을 다시 한번 실감한 순간이다. 새벽 공기가 워낙 시원하고 좋아서 동반 올드 타운을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프랑스 군대가 세워 놓은 포대가 있다고 했다. 동반현을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한참을 헤매다 입구를 찾지 못해 포대 답사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하장으로 귀환하는 여정은 전날보다 30Km쯤 길다. 서둘러 가야 해가 지기 전에 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초 여행 계획은 하장에서 왼쪽으로 QL4C 도로를 타고 가서 돌아올 때는 원을 그리듯이 동반현 오른쪽으로 QL34번 도로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동반현 호텔에서 만난 여행 가이드가 QL34번은 도로가 험해 사고의 위험이 있다며 왔던 길을 되짚어 갈 것을 권했다. 아직 개발이 덜 된 지역들로 가는 길은 자갈과 모래로 얼기설기 길 흉내만 낸 도로들이 많았다. 토사가 쏟아져 길이 막힌 곳들도 많다고 했다. 실제 동반형에서 마피령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 일행은 도로가 막혀 한참을 길가에 서 있어야 했다. 전날 내린 비로 나무가 쓰러지고 흙이 흘러내려 외길을 막고 있었다. 마피령으로 갈 때는 오토바이 정도는 통과할 수 있었는데 되돌아 올 때 보니 포크레인이 아예 길을 막고 도로 위 흙더미를 치우고 있었다. 30분쯤 흙을 퍼내고, 밀며 포크레인이 애를 쓰자 막혔던 길은 금새 뚫렸다.

카르스트 고원은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는 관광 명소다. 기타 하나를 등에 멘 채 오토바이크 여행을 하는 이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현까지 관광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와서 마피령과 룽꾸를 둘러본다. 마피령 정상에 가려면 입구에서부터 도보로 2~3시간을 걸어야 한다. 갈 길 바쁜 우리 일행은 마피령 입구에서 맛있는 베트남식 커피로 아쉬움을 달래며 룽꾸로 방향을 잡았다. 현에서 룽꾸로 가는 길은 중국과 가장 가까워지는 길이다. 제대로 포장된 길이 거의 없을 정도로 길이 험하다. 베트남 최북단에 있는 룽꾸는 용(龍)의 전설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룽꾸가 있는 산은 용산(龍山)이라고 불리고, 인근 호수는 용의 눈물이라고 불린다. 베트남 북부 도시들은 용의 이미지를 차용한 곳들이 꽤 많다. 룽꾸는 용이 사는 곳이란 뜻이고, 하롱(Ha Long)은 용이 하강한 곳, 탕롱(Tang Long, 하노이의 옛 이름)은 용이 승천한 곳이란 의미다.
룽꾸 정상에 있는 국기탑엔 54제곱미터의 대형 일성홍기가 펄럭이고 있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54개 소수 민족을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곳엔 소수민족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베트남 최대 민족이자 도시 사람들인 킨(Kinh)족 관광객들로 붐볐다. 베트남 정부는 늘 소수민족과 킨족, 고지대 사람들과 저지대 사람들의 통합을 강조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일반적인 베트남 사람들은 소수민족들을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생각한다. 간혹 소수민족 출신 학생이 미국 유수의 대학에 장학생으로 선발됐다는 이야기가 베트남 언론을 타고 전파되기도 하지만, 그런 신데렐라 스토리는 가뭄에 콩나듯 불가능에 가깝다. 하장에서 동반까지 여러 마을을 지나쳤지만 고지대엔 학교라고 할만한 시설을 찾기 어려웠다. 학교를 세워봐야 교사들이 오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학교 운영 자체가 어렵다고 한다. 이 같은 교육 불평등은 갈수록 고지대와 저지대의 간극을 더 벌려 놓고 있다.

룽꾸를 끝으로 동반 카르스트 여행은 마무리됐다. 하장으로 가는 길은 깊은 안도감과 언제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오토바이크 운전도 한결 편해졌다. 무엇이든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박동휘 하노이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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