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가전 '6월 뒷심'…LG전자, 반도체 없어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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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기 매출 12조8340억·영업익 4931억 선방LG전자가 2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높은 파도를 순조롭게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19 무풍지대’로 불리는 반도체 사업이 없음에도 시장 예측을 훌쩍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냈다. 의류청정기, 세탁기, 냉장고 등 생활가전 제품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억눌렸던 소비 뒤늦게 폭발
시장 예측보다 영업익 20%↑
美서 월풀과 격차 더 벌려
스마트폰 손실폭도 감소
변곡점은 미국과 유럽에서 가전유통 매장들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한 지난 6월이었다. 억눌렸던 소비가 터지는 시점에 맞춰 이뤄진 마케팅과 물량 공세로 수요를 쓸어담는 데 성공했다. 업계에선 코로나19를 계기로 LG전자가 글로벌 생활가전업계 1위를 굳혀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증권가 추정치 훌쩍 뛰어넘어
LG전자는 7일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LG이노텍을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 12조8340억원의 매출과 493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7.9%, 영업이익은 24.4% 감소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증권사가 내놓은 LG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 추정치 평균은 4009억원이었다. 영업이익만 보면 시장 예측을 20% 이상 뛰어넘은 ‘어닝 서프라이즈’인 셈이다.주력 제품인 생활가전이 제몫을 다했다는 평가다. LG전자에서 생활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13.9%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지난 1분기에 육박하는 수치다. 의류청정기를 필두로 한 ‘신(新)가전’이 실적 선방의 한 요인이었다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TV 분야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OLED TV, 나노셀 TV 등 프리미엄급 제품이 꾸준히 팔리면서 이익을 방어했다.스마트폰과 전장사업에선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부문에선 영업손실이 발생했지만 그 폭은 전년 동기보다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신제품 스마트폰 ‘벨벳’이 미국 유럽 등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결과다. 전장사업은 적자 폭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완성차 업체들의 셧다운이 잇따르면서 매출과 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글로벌 경쟁자들과의 격차 벌려
LG전자는 글로벌 생활가전 시장 1위 기업이다. 1분기 H&A사업본부는 5조4180억원의 매출과 753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매출에서 경쟁사인 월풀(약 5조1623억원), 일렉트로룩스(약 3조3000억원) 등을 앞섰다. 두 회사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각각 6.0%와 0.5%로 LG전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삼성전자도 LG전자 못지않게 생활가전 부문에서 선방했지만 분기 매출 규모는 5조원을 넘지 못했다. CE(소비자가전) 부문에서 TV를 담당하는 VD사업부를 제외하면 매출이 약 4조6500억원이었다.LG전자와 월풀의 격차는 2분기 더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에 따른 타격이 심했던 북미 사업 비중 차이가 실적 격차로 이어졌다. LG전자 H&A사업본부의 지난해 북미 시장 매출 비중은 24%다. 월풀은 56%나 된다. 업계 관계자는 “2분기 북미 시장 위축에 따른 영향을 월풀이 훨씬 더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LG전자는 2분기, 그중에서도 6월부터 미국 시장에서 월풀을 압도하고 있다. LG전자는 특히 6월 중순부터 2주간 이어진 독립기념일 프로모션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90% 이상 급증했다. 코로나19로 가전제품 구매를 미뤄왔던 현지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4~5월 매출 손실을 상당 부분 만회했다는 설명이다. 3월 말부터 대부분의 점포를 폐쇄한 미국 최대 가전유통업체 베스트바이는 5월 말부터 매장을 재개장하기 시작해 지금은 약 800곳에서 영업 중이다. LG전자 관계자는 “6월 판촉전에서 유연한 글로벌 SCM(공급망 관리)의 덕을 톡톡히 봤다”며 “제품 구색과 물량에서 셧다운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월풀 등 경쟁 업체들을 압도했다”고 설명했다.
‘새 공장’ 효과도 있었다. LG전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초기에 미국 테네시주에 세탁기 공장을 지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세이프 가드(특정 품목 수입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공장은 최신 자동화 설비를 갖춰 코로나19 셧다운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크지 않았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