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 등 소소한 모습 비춰…근현대사 상흔 어루만질 것"

국립극단 연극 '화전가' 극작가 배삼식
극작가 배삼식(사진)은 연극 ‘3월의 눈’(2011), ‘먼 데서 오는 여자’(2015), ‘1945’(2017) 등을 통해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을 더듬으며, 상흔을 비추고 어루만져 왔다. 개인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비추며 미시적인 관점에서 근현대사의 궤적을 톺아봤다.

그가 최근 집필한 국립극단 70주년 기념 연극 공연 ‘화전가’의 대본도 마찬가지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50년 4월 어느 화창한 봄날에 여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꽃잎으로 전을 부쳐 먹으며 화전놀이(꽃놀이)를 하는 풍경을 그린다. 지난 7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만난 배 작가는 “우리는 의미를 추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때론 그 의미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며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수다, 곱게 지은 옷이 살갗에 스칠 때의 느낌, 솔숲에 부는 바람 등 의미를 따지는 입장에선 무용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오히려 의미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폭력적인 시대에 화전놀이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저항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역할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화전가’는 지난 2월 28일~3월 22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취소됐다. 긴 기다림 끝에 오는 8월 6~23일 무대에 오른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공연이 취소되면,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된다. “연극은 배우와 제작진 모두에게 생업을 넘어서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연극은 이전에도 힘들고 어렵게 이어져 왔지만 이번 사태로 더 절실하고 귀한 것이 됐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집필하는 것은 ‘자괴감’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뿌리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가까운 공동체의 경험에 대해 사회가 어떤 구체적인 상(像)도 갖고 있지 못해요. 그 자괴감에서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당면한 현실에 질문을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앞으로를 전망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전가’ 연출은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맡았다. 배우 예수정, 전국향, 김정은 등이 무대에 선다. 이들은 진득하고 구수한 경북 안동 사투리로 연기한다. “경북 지역 말투는 물이 흐르듯이 부드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언어는 의미나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죠. 뉘앙스와 말투 등 그 질감도 중요해요. 그 자체가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연극은 한복과 먹거리 등을 통해 격변의 시대에도 다같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던 정겨운 모습을 담아낼 예정이다.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세계가 잘 드러나면 좋겠습니다. 봄밤에 친척들과 득실하게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모습을 최대한 잘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는 코로나19 시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접촉’에 관한 작품도 집필할 생각이라고 했다. “접촉만큼 깊은 인간감을 느끼게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정확하게 자아를 인식할 수 있게 하고, 타자와의 관계도 만들어내죠. 접촉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시대에 내가 만졌던 것, 나를 만졌던 바람과 햇빛,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 등을 다뤄보고 싶습니다.”

글=김희경/사진=김범준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