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대차 노조도 위기 느꼈나…"회사 살아야 우리도 산다"

"전투적 조합주의 못 벗어나면 자멸
투쟁도 생산이 잘 돼야 할 수 있다"

지난 4월 임금동결-고용유지 제안하기도
임단협 요구안에 무리한 인상 자제할 지도 주목
사진=연합뉴스
"회사가 생존해야 조합원도 노동조합도 유지될 수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9일 내놓은 내부 소식지에 포함된 문장이다. 노조 지도부는 최근 추진한 품질혁신 운동을 두고 일부 계파가 '회사 측과 결탁한 것 아니냐'고 비판하자 이같이 반박했다. 노동계는 지금까지 이 표현을 쓰는 것을 금기시해왔다. 노동계 관계자는 "주로 사측이 '회사가 살아야 근로자도 산다'고 주장해왔다"며 "현대차 노조가 이렇게 주장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강경 투쟁의 대명사였던 현대차 노조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노조는 소식지에서 "현재의 정세는 나만 살고 보자는 집단적 이기주의로 돌파할 수 없다"며 "아직도 전투적 조합주의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합원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면 자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현대차가 사상 초유의 위기에 빠진 상황 속에서도 강경 투쟁을 요구하는 노조 내 일부 세력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어 "투쟁도 생산이 잘 되고, 차가 잘 팔려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전기자동차 시대를 무작정 거부하지 말자는 목소리도 냈다. 지난해까지 현대차 노조는 전기차 시대가 오더라도 총 고용인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에 비해 공정이 단순하고, 조립에 필요한 인력 수도 적다. 필요 생산직 수가 40% 가량 줄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현대차는 이를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감소로 해결할 계획이지만, 노조는 정년퇴직자 수만큼 신규 채용을 하라고 회사를 압박해왔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최근에도 "친환경차 투입시 일감이 줄어드는 근로자의 고용보장을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부는 전기차 체제로 전환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다.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이날 소식지를 통해 "내연기관차를 고집하면 우리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 등 변화를 부정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노조원의 고용을 보장하고 현대차의 경쟁력을 갖춰나갈 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동차산업은 일자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날 현대차 노조가 '변화'를 선언한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해석이 나왔다. 무조건 파업을 하고, 회사 경영 사정과 상관없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회사 안팎에서도 강성노조의 대명사였던 현대차 노조가 달라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월 취임한 이상수 위원장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위원장은 실용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취임 직후 "노조는 무분별한 파업을 지양해야 한다"고 '공개 반성문'을 냈고, 지난 4월에는 공장 간 물량 전환 및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생산하는 '혼류 생산'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4월 소식지를 통해 "코로나19로 세계 노동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고, 현대차도 수출시장 붕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독일 노사의 위기협약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현대차 노조의 올해 임금 및 단체교섭 요구안이 변화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라 기본급 6.5%를 인상해달라고 요구할 경우 '말로만 변화'를 외쳐왔음을 자인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기본급 인상을 최소화하는 요구안을 내놓으면 '현대차 노조가 진짜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현대차 노조는 오는 21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요구안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