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과잉처벌은 민간 활력 위축시켜…정부는 '심판의 오류' 경계해야

[사설] 징벌적 과세·과태료·규제…국민 겁주는 정부인가

정부와 여당이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의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올리고 1~2년 안에 주택을 사고파는 매매자에게 징벌적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당정 내부에선 1년 미만 보유 주택을 파는 사람에게는 양도세율을 최고 80%까지 끌어올리자는 주장도 나온다. 집을 사고, 거주하고, 팔 때 모두 징벌적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6·17 대책까지 총 21번의 부동산 안정책을 내놨지만 집값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대대적인 세금 인상 카드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주택 관련 세금을 징벌적으로 높이는 것은 집을 사고파는 사람 모두를 투기꾼으로 간주하는 것이라는 반발 여론이 거세다.

정부가 징벌적 처벌을 내리려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화재 사고를 계기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중대 산업재해는 기업주에게 징벌적 과징금을 매기고 형사처벌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중소·벤처기업의 기술을 유용한 대기업에 대해선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를 현행 손해액의 3배에서 10배로 높인다는 방침이다. 여당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도 징벌적 처벌조항이 다수 포함돼 있다.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정세균 국무총리는 어제 “개인의 방역의무 위반행위에 대해선 징벌적 과태료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정책 목적을 위해 위법 행위자를 처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처벌 수위가 일반의 상식을 넘는 징벌적 응징이어선 곤란하다.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중략)… 투기꾼을 잡겠다며 주택 양도세를 징벌적으로 올리면 매물이 줄어 집값과 전셋값이 뛰게 마련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등은 민법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고,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을 가능성도 있다.정부는 시장의 공정한 규칙을 정하고 참가자들이 이를 잘 지키도록 유도하는 감시자 역할에 그쳐야 한다. 물론 악의적·의도적으로 위법을 저지르고 시장질서에 심각한 폐해를 끼친 자는 법이 정한 범위에서 엄벌할 필요도 있다. 그 경우에도 징벌을 남발해선 안 된다. 징벌보다는 자발적 유인(誘因)을 제공하는 정책이 훨씬 효과적일 때가 많다. 그래야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살리면서 경제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시장경제를 원활히 돌아가게 하는 데는 채찍만이 아니라 당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7월7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국가나 법이 인간 모든 행위 규제할 수 없어
세금 강화·과잉처벌은 '잘못된 심판'만큼 위험
'규제·처벌' 일변도 벗어나 '지원·육성' 주력해야

가정을 해보자. 강도나 폭력 행사가 추방해야 할 범죄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법만 많이 만들면 그런 범죄행위가 없어질까. 가령 기존의 형법과 관련법 외에 ‘청소년 대상 강도행위 가중처벌법’ ‘학교 내 폭행 특별 단속법’ ‘시장 체육관 등 다중시설 강도 예방법’ ‘직장 내 폭행 방지법’ ‘가정 내 폭행 방지 특별법’ ‘공공기관과 그 주변에서의 강도 및 폭행 예방법’ ‘강도행위 증인 미신고 처벌법’ ‘폭행 현장의 미가담자 중 미신고자 실형법’ ‘강도 행위 인지 후 즉시 미신고자 징역형법’ ‘거리 폭행 현장에서 뜯어말리지 않은 행인 벌금형법’…. 이런 식의 법을 촘촘하게 만든다고 치자. 그러면 강도가 근절되고, 폭력도 줄어들까. 사기나 타인 재산 부정 편취가 문제 된다고 법만 계속 만들면 인간은 착해질까.형법에 경제법까지, 그런 처벌법은 이미 어느 정도 있기도 하거니와 법이 아무리 많고 강도 높은 처벌규정이 있어도 범죄행위는 생긴다. 그것이 인간 사회다. 굳이 범죄를 줄이려면, 개인들이 처한 환경을 개선시켜나가는 게 현실적 해법이다. 예컨대 다수가 좀 더 잘 살게 하고, 사회적 격차를 줄이게 하면서, 경찰 활동을 강화하거나, CCTV 확대로 예방 시스템을 확대하면서, 종교계·학계 등 사회적 지도층이 좀 더 솔선하거나, 방송 등 미디어가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계도 기능을 하는 것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설계주의자, 특히 국가나 법이 인간의 모든 행위를 감독·규제하고 심지어 윤리적인 사회로 이행시킬 수 있다고 보는 ‘어버이 국가론자’들이 현대 사회에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법률과 행정, 국가와 정부는 인간 본성과 관련된 부분이나 도덕적 영역까지 간섭하고 계도해 특정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는 존재로 비칠 것이다. 경계할 일이다. 국가의 역할이나 정부의 기능이 과대해지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법규를 운용하면서 사회 각 부문(주로 민간)의 활동을 견제하다 보니 심판과 같은 위치에 설 때가 많다. 공무원들이나 제도권 내 정치인이 스스로를 그런 심판이라고 여길 때가 많다.문제는 심판이 잘 못할 경우다. 심판이 외부세력에 매수돼 공정·객관·중립성을 잃어버리거나, 능력이 부족해 선수의 반칙을 미처 못 보거나, 심판 스스로의 편견으로 인해 특정 팀이나 특정 선수들만 유별나게 차별 대우하는 경우를 상정해보자. 선수 한 사람의 오류나 규정 위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심판은 도덕성과 능력, 탈(脫)편견의 ‘3박자’를 갖춰야 한다. 현대의 정부가 그런 심판에 해당된다. 공무원을 그대로 심판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법규의 운용자, 행정의 집행자라는 측면에서 비유할 만하다. 그런 심판은 업무와 기능의 특성상 스스로가, 심지어 스스로만 정의롭다고 착각하기 쉽다. 이런 잘못을 ‘심판의 오류’ ‘심판의 함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부가, 공무원이 정말로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세금 강화 일변도로 주택시장을 다루겠다는 단순한 정부, 기업에 유독 과잉 처벌법으로 접근하는 정부는 잘못된 심판만큼이나 위험하다. 과도한 응징이 경제뿐 아니라 민간의 모든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사실도 명약관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