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가 테슬라에 따라잡히게 된 결정적인 장면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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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테슬라 첫 양산공장 '제공'해 성장기반 마련해줘
"도요타와는 엮이지 않겠다" 선언한 소프트웨어로 테슬라 '훨훨'
2010년 5월 도요타는 전기자동차를 공동개발하기 위해 5000만달러(약 600억원)를 신흥 벤처기업 테슬라에 출자했다. 앨런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존경하는 도요타와 제휴한 역사적인 날"이라고 감격해 할 정도로 당시만 해도 두 회사의 입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테슬라는 출자받은 돈으로 도요타가 막 폐쇄한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공장 부지와 건물을 사들였다.
테슬라가 처음 양산 공장을 갖는 순간이었다. 도요타가 매입자금까지 쥐어주며 '제공'한 프리몬트공장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올해 7월1일 테슬라(시가총액 2075억달러)가 도요타(2025억달러)를 제치고 세계 자동차 기업 시가총액 1위에 오른 기반이 됐다. 자금을 아끼려 프레스 등 제조기계까지 중고품을 그대로 물려받은 이 공장에서 테슬라 최초의 양산차인 모델S가 생산됐다. 모델S의 성공은 저가형 모델인 모델3의 양산과 중국 상하이의 대규모 공장 건설로 이어졌다. 자동차를 양산하는 법을 몰랐던 테슬라가 프리몬트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영입한 인재도 도요타의 캐나다공장 임원이었다.도요타를 발판으로 삼고 세계 최고 자동차 회사가 된 테슬라와 달리 도요타는 테슬라를 제대로 활용하는데 실패했다. 2012년 테슬라와 공동 개발한 전기차 모델 RAV4 EV의 판매가 부진하자 도요타는 2014년부터 테슬라 보유지분을 팔아 2017년 관계를 완전히 정리했다. 지난 1년간 테슬라 주가는 500% 올랐다.
도요타와 개발철학이 완전히 달랐던 앨런 머스크도 악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도요타가 심혈을 기울인 연료전지(퓨얼셀) 자동차를 여러차례 "푸울(fool·바보) 셀"이라고 폄하했다. 전기차 시장에서 고전하던 도요타의 간부도 테슬라와 다시 제휴할 가능성에 대해 "그곳(테슬라)만은 안된다"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프트웨어 전략에 대한 차이가 도요타와 테슬라의 명암을 가른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13일 분석했다. 자동차의 부가가치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시대에 도요타는 여전히 하드웨어를 중시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앱이 자동차 내비게이션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한 이후에도 자동차 일체형 내비게이션을 고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작부터 정통 제조업체라고 보기 어려웠던 테슬라가 하드웨어에 얽매이지 않고 일찌감치 원격 업데이트 기능이 달린 내비게이션을 채택하고 자동운전 기능을 탑재하는데 적극적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 신문은 "2017년까지도 도요타는 '개발속도가 훨씬 빠른 소프트웨어에 하드웨어(자동차)를 어떻게 대응시킬 것인가'라는 당면과제에 대한 명확한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며 "그 결과가 시가총액 역전"이라고 진단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