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P2P 금융이 혁신성장 이루려면

돌려막기 아닌 장기계획 절실
성장단계 맞춘 게임 룰도 필수

이진석 <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
금융시장이 혼란스럽다. 사모펀드 환매 중단, 개인 간(P2P) 대출 업체(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자)의 가짜 담보 대출, 나날이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일부 주식리딩방의 불법 투자자문 등에 관한 언론 보도가 끝이 없다. 이 중 사모펀드와 P2P 대출은 산업 발전의 토양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태에서 과속 성장하다 보니 문제가 심화된 측면이 크다. 역사가 짧은 P2P 대출의 경우 특히 그렇다. P2P 대출은 평균 금리가 10%대인 고위험 상품이지만 이제까지 시장 자율에 맡겨왔다. 초기부터 엄격한 규제의 틀을 적용하면 산업이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게임의 룰이 자생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속도보다 산업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 보니 일탈과 속임수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P2P 대출산업이 겪는 진통이 만만치 않다. 중국의 경우 2017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나 투자자 피해 증가와 부실업체 난립으로 규제가 강화됐다. 결국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모든 P2P 대출업체를 소규모 대출회사로 전환하도록 지시했다. 중국에서 P2P 대출산업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영국도 상황이 좋지 않다. 투자자 보호 규제 강화로 수익성이 하락하면서 P2P 대출업계 선두회사가 디지털은행으로 전환하거나 영업을 종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급기야 올해 1월에는 P2P협회가 다른 금융 관련 협회로 흡수됐다. 이와 달리 미국의 P2P 대출산업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은 처음부터 투자자 보호 원칙을 지켰다.

주요 국가의 P2P 개인 대출 금리는 연 10%대 중반으로 비슷하다. 그러나 연체율은 차이가 난다. 일부 선두업체 기준으로 보면 영국은 3~5%, 미국은 10%가 넘는다. 한국의 몇몇 선두업체 연체율은 1~2% 수준이었다.

그러나 금감원의 현장검사에서 해당 P2P 대출업체의 높은 수익과 낮은 연체율의 비결이 ‘돌려막기’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투자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P2P 대출업체는 이를 드러내지 않고 허위상품이나 가치가 불분명한 상품이 담보로 확보된 것처럼 속여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했다. 신규 투자자로부터 받은 자금을 기존 투자자의 대출금 상환에 사용한 것이다.

금융혁신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산업 발전의 토양이 갖춰지지 못한 상태에서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먼저 금융회사는 단기 업적주의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투자자 또한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금융당국은 해당 산업의 성장단계에 맞춰 공정한 게임의 룰을 세워가야 한다. 적시성이 중요하다. 다음달 P2P 대출법이 시행된다. 문제의 P2P 대출업체들이 돌려막기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모멘텀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