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5명 중 1명 임금, 정부가 결정해주는 나라

내년 최저임금 1.5% 올라 130원 인상
최저임금 영향률 20% 넘어설 듯
근로자 최소 400만명 이상 임금 올라
최저임금도 못받는 근로자 비율 16.5%
현실서 작동 못하는데 인상률에만 급급
노사 힘겨루기식 소모전 이제는 바꿔야
사진=뉴스1
2021년 적용할 최저임금액은 올해보다 1.5% 인상된 8720원으로 결정됐다. 금년 인상률 2.87%보다 낮은 것은 물론 외환위기 때인 1999년 2.7%보다도 낮은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의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인상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도 나온다.

13일 최저임금위원회는 8차 전원회의를 열어 14일 새벽까지 마라톤회의를 이어간 끝에 공익위원안을 놓고 막판 표결을 거쳐 내년 최저임금안을 심의 의결했다. 근로자위원 전원과 사용자위원 2명도 공익위원안에 반발해 퇴장해 표결에는 사용자위원 7명과 공익위원 9명이 참여했다. 20일간의 이의제기 신청 등 절차를 거쳐 8월5일 고시되면 최종 효력을 가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사의 이의 제기가 받아들여진 사례는 없어 사실상 최종 확정된 셈이다. 당초 이날 회의는 근로자위원 9명 중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위원 4명은 불참하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위원 5명만 참석했다. 민주노총은 13일 저녁 세종청사 앞에 천막을 치고 김명환 위원장 주재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었지만 일찌감치 불참 쪽으로 결론났다. 김 위원장은 최저임금위원회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근로자위원으로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윤택근 부위원장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이 불참으로 입장을 정리하자 오히려 최저임금위원회 논의는 탄력을 받아 14일 새벽 타결될 가능성이 점쳐지기 시작했다. 한국노총도 회의 막판 공익위원단의 1.5% 인상률 제안에 반발해 퇴장하긴 했지만 마지막 단계까지 협상을 끈을 이어갔다.

역대 최저 수준의 인상률을 놓고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감안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번 최저임금 심의 결과나 과정 모두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이날 결정된 최저임금은 인상률만 보면 1.5%에 불과하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130원이 인상됐다. 자영업자나 영세 소상공인들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이 미국, 일본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작년에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낸 기업이 34.1%에 달하는데 최저임금 인상은 이들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체 근로자의 5분의 1 이상의 임금을 국가가 직접 정해주는 것이 과연 시장경제 원칙에 맞느냐는 문제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이 따라 올라가는 근로자의 비율을 의미하는 최저임금 영향률은 2019년 25%, 2020년 20.7%에 이어 내년에도 20% 이상으로 예상된다. 약 2000만명의 임금 근로자 가운데 400만명 넘는 수의 근로자 임금을 사실상 국가가 결정하는 셈이다. 최저임금이 이미 시장에서 작동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도 문제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의 비율인 최저임금 미만율은 2019년 이미 16.5%에 달한다. 근로자 수로는 338만명이나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이나 숙박음식업, 농림어업 등에서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30~40%에 달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저임금은 계속 오르고 있다. 저소득 근로자와 영세 사업주의 박탈감은 물론 법의 사각지대도 확대 일로다.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을 하루 빨리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함께 내년 경제 상황에 대한 예측을 전제로 결정돼야 할 최저임금이 노사 간의 '샅바싸움'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대 국회에 제출됐다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이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담았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와 공익으로 이뤄진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것이 골자다. ILO협약 비준 관련 노동법 개정안 등 자동 폐기된 법안 대부분은 일괄 재상정됐지만 최저임금법안은 여야 정치권은 물론 정부조차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