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시동 안걸고 비탈 내려가다 사고…법원 "운전 아니어서 무죄"

"운전은 시동 걸고 발진조작 완료해야…운전자 의지나 관여 없어 운전행위 아냐"
엔진에 시동이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브레이크 페달 조작만으로 경사로를 내려가다 발생한 사고에 운전자의 형사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도로교통법상 '운전'에 해당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취지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부(황순교 부장판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상)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중국인 왕모(35)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두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음주운전 혐의에만 유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형량은 1심의 벌금 1천만원에서 400만원으로 줄었다. 왕씨는 2017년 7월 17일 오전 4시 50분께 서울 마포구의 한 경사로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후진하다 뒤에 정차해 있던 택시와 부딪히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택시기사 A씨는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왕씨는 당시 음주운전을 한 후 차에서 내려 지인 유 모 씨에게 운전을 맡겼다가 차량이 뒤로 밀리자 다시 차에 탑승했다. 이후 그는 시동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했고, 차량이 계속해서 후진하다 뒤에 정차해 있던 택시와 부딪히는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위험운전치상을 유죄로 인정하려면 당시 피고인이 차량을 '운전'한 점이 인정돼야 하고, 이를 인정하려면 피고인이 당시 차량 엔진을 시동하고 발진조작을 완료했거나 엔진 시동이 켜진 상태에서 발진조작을 완료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록 피고인이 자동차를 운전해 가려고 브레이크 페달 등을 조작하다 차량이 뒤로 진행했다고 해도 당시 변속 레버를 후진기어에도 놓지 않은 점까지 보면 이는 피고인의 의지나 관여 없이 경사진 도로에서 차량이 뒤로 움직인 것으로 '운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며,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결에 사실오인과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