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간과 워런 버핏은 왜 은에 베팅하는 것일까 [여기는 논설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어서일까. 금(金)은 돌반지로 주고 받을 만큼 친숙하지만 은(銀)은 왠지 낯설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값이 사상최고가를 기록하자 ‘안전자산이니 그럴만 하지’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은값도 뜀박질 중이라는 소식에는 '왜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다.

국제 은 가격은 '코로나 팬데믹'이 선언된 3월 중순 이후 67% 급등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 선물시장에서 3월 18일 11.83달러이던 트로이온스당 은 가격은 현재 19.64달러(15일 오후 2시 기준)다. 연말에는 25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같은 기간 금 선물 시세는 20% 올랐으니 ‘뛰는 금위에 나는 은’이라 부를 만하다. 한국인에게 홀대받지만 은은 세계경제사에서 금 못지 않은 역할을 해온 핵심 자산이다. 화폐 단위의 가치와 은 일정량의 가치를 등가시키는 은본위제(silver standard)의 역사는 금본위제 만큼이나 유서 깊다. 지금 같은 신용화폐시스템 이전에는 금본위제였던 줄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금과 은을 동시에 활용하는 복본위제가 일반적이었다. 고대로마도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동시에 채택했다. 하지만 금이 희귀한 탓에 실질적인 기축통화는 은화였다.사실상 은본위제였다고 볼 수 있다.

은본위제의 기원은 세계최고(最古) 문명으로 꼽히는 수메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 로마 진(秦) 한(漢) 등이 고대 강국으로 군림한 것도 은 덕분이었다. 조선이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은본위제를 시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은본위제의 대표국가를 꼽자면 중국을 빼놓을수 없다. 명청 시대에 도입된 중국의 은본위제는 중화민국 국민정부시기까지 존속했다. 은본위제를 통해 중국은 세계 역사 및 경제사와 깊숙히 연결됐다.

16세기 초 스페인령 신대륙에서 거대한 은광맥이 발견되고 여기서 채굴된 은이 서유럽으로 실려갔다. 17세기 중반까지 한세기 반에 걸쳐 신대륙에서 스페인으로 수입된 은은 1만6000여톤에 달했다. 이 은이 프랑스 영국 등으로 흘러들어 유럽전반에 '가격 혁명'이라 불리는 물가급등을 낳았다. 당시 노동자의 임금은 고정된 탓에 가격혁명 과정에서 소위 ‘자본의 원시적(본원적) 축적’이 이뤄졌고, 이는 세계경제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가속화시켰다.스페인의 은은 다른 한편으로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유입돼 중국의 은본위제를 발전시켰다. 청나라와 차 비단을 거래하면서 영국은 은을 지불했고,대규모로 유출된 은을 회수하려고 인도산 아편을 청에 파는 꼼수를 동원했다. 이렇게 싹튼 양국 갈등이 '아편 전쟁'으로 이어져 청의 몰락을 재촉했다. 청은 중남미에서 채굴된 은으로 말미암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셈이다. '은의 저주'로도 불리는 이런 불운은 중국 외에서도 적잖이 목격된다. 혹독한 작업으로 악명 높은 은광 채굴에 투입된 신대륙 인디오들은 약 800만명이 사망하며 멸족하다시피했다. '무적함대'로 세계를 호령했던 스페인의 쇠락도 따지고 보면 은 때문이다. 식민지에서 대규모로 공급되는 은을 믿고 흥청망청하다보니 산업혁명 경쟁에서의 탈락을 불가파했다.

은 가격의 최근 급등은 '코로나19 사태'가 기본 배경이다. 금과 함께 안전자산으로 투자수요가 늘어난 반면 감염우려 탓에 멕시코 페루 등지의 대규모 광산들이 운영을 중단해 공급은 위축됐기 때문이다.

수급불균형 외에 세계최대 금융투자사로 손꼽히는 JP모건의 역할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JP모간은 10여년전 전부터 매집을 시작해 뉴욕상품거래소(코멕스) 창고에 보관된 은의 절반에 해당하는 1억6000만 온스 가량을 보유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코로나로 균열을 보이는 달러 체제의 위험을 헤지하고, 은 실물에 기반한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자가 없고 재투자가 불가능하다며 금은 거들떠 보지도 않던 워런 버핏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은 투자에는 적극적이다. 은 실물에 직접 투자해 큰 수익을 남기기도 했던 버핏은 이제 JP모건 주식을 대규모 매집하는 방식으로 은에 베팅중이다. JP모건, 워런 버핏 등은 자타공인의 초고수들이다. 이들이 은을 매집하고 그 결과로 시세 변동성이 커지는 데 대한 궁금증이 증폭될 수 밖에 없다. '은의 저주'라는 오래된 무의식과 오버랩되면 알수 없는 불안감이 커진다. 가뜩이나 범상치 않은 무제한적인 양적와화가 잇따르면서 국제금융질서의 미래전망에 대한 의구심이 만만치 않은 판국이다. 은의 부상은 우리 시대가 당면한 혼란의 징표로 읽기에 충분하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