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토랑'으로 되살아난 PC방…매출 절반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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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됐던 시장 2兆 돌파 기대바삭하게 구워 먹기 좋게 자른 삼겹살에 깻잎, 상추, 쌈장이 한 접시에 담겼다. 사이드 메뉴로는 고르곤졸라 치즈를 얹은 사각피자가 나왔다. 후식은 아이스 캐러멜 마키아토. 주문한 지 10분 만에 모든 메뉴가 제공됐다. 이곳은 식당이 아니라 대구의 한 PC방이다. 메뉴는 70여 가지. 음료 메뉴를 합치면 100종이 넘는다.
'피슐랭가이드' 아시나요
삼겹살·피자 등 메뉴만 70가지
온라인서 '맛집 PC방' 공유도
PC방용 PB라면도 등장
삼성웰스토리 등 식자재업체들
전용 밀키트 개발, 진출 잇따라
전국 1만8000여 개 PC방은 요즘 ‘PC토랑’으로 불린다. 먹거리 매출이 평균 40%를 넘고, 60%에 육박하는 곳도 많다. 음식 맛이 좋은 PC방을 골라 작성한 ‘피슐랭가이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명하다. 서울 신림동 치킨치즈버거, 역삼동 김치볶음밥, 대구 연어회 등. 맛집 메뉴가 아니라 PC방에서 소문난 음식들이다.이 시장이 커지면서 식품업계도 들썩이고 있다. 단체급식, 식자재 유통회사인 CJ프레시웨이와 삼성웰스토리는 물론 하림의 육가공 계열사 팜스코, 밀키트 1위 업체 프레시지까지 PC방업계를 위한 식자재 공급 및 메뉴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PC방 게임시간 규제법과 코로나로 큰 타격
시간당 일정 요금을 받는 PC방이 본격 등장한 것은 1996년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대량 실직 사태가 벌어지고,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인기를 얻으며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0년대는 PC방의 황금기였다. 2009년 기준 전국 PC방 수는 2만1547개에 달했다. 한 집 건너 PC방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후 모바일게임에 밀리고, 2013년 게임시간 규제법이 시행되며 침체기가 시작됐다. 2015년에는 전국 PC방 수가 1만1282곳으로 반토막 났다.PC방이 다시 살아난 건 2016년부터다. 생존을 위해 대형화, 프랜차이즈화가 진행됐다.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로스트아크’ 등 대박난 게임도 속속 등장했다.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가맹점 수익을 높일 방안으로 먹거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고급 사양 게임기기를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기기를 유지·보수해야 하는 기존 PC방 비즈니스 모델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었다. 전국 600여 개 점포를 거느린 국내 1위 PC방 프랜차이즈 아이센스리그PC방은 2017년부터 ‘쉐프앤클릭’이라는 이름으로, 샹떼PC방은 ‘스쿡(SCOOK)’이라는 이름으로 음식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다. 라이또PC방의 ‘뉴잇또랑’, 피에스타PC방의 ‘피방쿡방’, 세컨드찬스의 ‘XOXO’ 등이 그 뒤 나온 PC방 운영 식음료 전문 브랜드다.PC방 매출 절반이 음식…배달 서비스도
한창 잘나가던 PC방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3~4월에는 손님이 이전의 80%까지 빠졌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각급 학교가 개강 대신 온라인 강의로 돌아서고, PC방마다 방역을 강화하면서 손님이 다시 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지난달 PC방 매출이 코로나 사태 이전 대비 60~80% 수준으로 회복했고, 연말이면 사상 최고였던 2009년 기록(1조9342억원)도 경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그 중심에 음식업이 자리잡고 있다.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컵라면과 과자, 음료수가 먹거리의 전부이던 PC방이 요즘은 ‘숍인숍’ 개념으로 먹거리 매출이 50%까지 올라온 곳이 많다”며 “부가 수익원이 주 수익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망한 PC방 식자재 사업…삼성도 진출
PC방에서 음식을 팔기 위해서는 ‘휴게음식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의 위생교육수료증, 보건증이 필요하다. 주요 PC방 브랜드 가맹점 중 휴게음식업 허가를 받은 곳은 70% 이상. 에어프라이어, 밥솥, 인덕션, 전자레인지, 커피 기기 등이 설치되면 본사 직원과 셰프 등이 매장에서 이들에게 교육을 한다. PC방이 대부분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아침 메뉴부터 야식까지 다양한 음식을 즐기러 오는 사람이 많다. PC방들은 음식 배달에도 나서고 있다. 배달의민족에 따르면 29개 PC방과 5개 만화방이 음식 배달을 위해 입점해 있다. 추가 입점 문의도 많다. 자체 배달대행업체를 쓰는 서울 시내 PC방 역시 상당수다.반조리 식자재와 밀키트를 취급하는 기업들은 이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단체급식 1위 삼성웰스토리와 밀키트 1위 업체 프레시지는 이달 협약을 맺고 조리가 간편한 밀키트를 공동 개발해 PC방 등에 납품하기로 했다. 세컨드찬스 PC방은 팔도와 협업해 자체상표(PB) 라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CJ프레시웨이는 PC방에 만두와 냉동볶음밥, 양파와 소스류 등을 납품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