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머니' 또 쏟아진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16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6월 소매판매는 시장 예상보다 양호했습니다.

전월 대비 7.5% 증가한 것으로 나와 월가가 예상한 5%대보다 증가폭이 컸습니다. 6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과 대비해서도 1.1% 늘었습니다.
의류판매가 100% 넘게 늘어났고 전자제품, 가구 등의 판매도 30% 이상 증가했습니다. 지난 5월 소매판매도 예비치 17.7% 증가가 18.2% 증가로 상향됐습니다.

소매판매는 미국 경제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소비를 가늠하는 지표입니다. 전체 소비의 4분의 1 가량을 차지하거든요.
코로나바이러스 충격이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이처럼 소매판매가 좋게나온 건 '헬리콥터 머니'를 퍼부은 덕분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1인당 1200달러(17세 미만 어린이 500달러)를 지급한 것 외에 실업자들에게 주정부가 주는 실업급여 외에 추가로 주당 600달러를 얹어주고 있습니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연봉 6만2000달러 이하를 벌던 미국인은 오히려 주당 수입이 더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로이터는 15일 JP모간 분석을 인용해 실업자 가구들이 실업 전보다 10% 이상 소비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습니다. JP모간이 3~5월 실업급여를 받은 6만1000가구를 분석한 결과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통상적 침체의 경우 일자리를 잃은 가구는 소비를 7% 줄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당 600달러를 추가로 받자 소비를 오히려 증가시킨 겁니다.
이런 추가 실업급여의 혜택을 본 사람이 3000만명에 달합니다. 이들의 63%는 실업 이전보다 소득이 증가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연방정부의 추가 실업급여가 이달 말로 종료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의 'V'자 반등 기대는 물 건너갈 수 있습니다.
특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던 주당 실업급여 청구건수가 지속적으로 주당 130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날 발표된 전주(~11일) 실업급여 청구건수는 130만명을 기록했습니다. 전주보다 1만명 줄어드는 데 그치면서 시장 예상 125만명을 웃돌았습니다.

15주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긴 했지만 6주 연속으로 130만명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바클레이즈는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여전히 충격적으로 많다. 15주 연속 줄어들긴 했지만 전주보다 1만명 감소한 건 4월초 줄어들기 시작한 뒤 가장 적은 감소치다. 이는 고용시장 회복이 정체 상태에 처해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4일로 끝난 주간까지 일주일 이상 실업급여를 신청한 계속 실업급여 청구자수는 42만2000명 감소한 1733만8000명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이는 계절조정치입니다. 계절을 감안하지 않은 실제 절대 수치를 따져보면 신규나 계속 청구건수 모두 오히려 늘었습니다. 신규 청구건수는 150만3892건으로 10만건 이상 증가했고, 계속 건수는 1735만5000명으로 83만8000명 늘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기록적 실업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코로나바이러스 재확산으로 경기 회복에도 제동이 걸린 상태에서 연방정부의 추가 실업급여가 2주 뒤 사라진다면 '소비 절벽'은 불가피하다"고 예상했습니다.

추가 실업급여뿐만이 아닙니다. 미 의회와 행정부는 경기부양법(CARES Act)에 따라 지난 4월말부터 6590억달러를 급여보호프로그램(PPP)론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나눠줬습니다. 이 PPP론도 이달이면 사실상 지원이 끝납니다.
골드만삭스가 PPP론을 받은 중소기업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84%가 지원받은 자금이 8월 첫째주면 모두 소진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단지 16%만이 추가 PPP론이 없이도 직원들 급여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지난 3일 휴회에 들어간 미 상원은 다음주18일 워싱턴DC 의사당으로 복귀합니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5월15일 추가 실업급여와 PPP론을 내년 초까지 유지하는 내용을 포함시킨 3조달러 규모의 추가 부양책(HEROES Act)를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이 지배하는 상원은 이 법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공화당은 주당 600달러 추가 실업급여 연장에 반대해왔습니다. 이 실업급여가 근로자들의 빠른 직장 복귀를 막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신 직장 복귀자에게 주당 얼마를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해왔습니다.

하지만 그새 미국의 분위기는 다시 많이 바뀌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재창궐하면서 신규 감염자가 하루 6만명을 지속적으로 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플로리다 등 인구가 많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주들이 모두 경제 개방 조치를 조금씩 되돌리고 있습니다.
상원의 복귀를 앞두고 벌써부터 추가 부양책 논의가 분주합니다. 월가에서는 7월 말까지 추가 부양책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클 지저스 공공정책 분석가는 "1조달러 규모의 부양책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① 올해는 대선이 있는 해다.
오는 11월 선거를 앞둔 공화당에게 단기 재정적자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11월 선거에는 대선뿐 아니라 상원의원 35명이 재선에 도전하게 된다. 이중 23명이 공화당 소속이다.
특히 현재 코로나바이러스가 급속히 재확산되고 있는 지역은 대부분 공화당이 지배하는 지역이다. 자기 지역구의 경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은 빨리 추가 부양책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

② 민주당도 재확산으로 경제 회복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 민주당은 이미 3조달러 규모의 추가 부양책을 통과시켜놓았다.

③ 기술적으로도 2주 내에 통과시킬 수 있다. 이번 법안은 기존 CARES act의 내용을 준용해 만들면 된다. 문안 협의나 법 통과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미 의회와 행정부 차원의 지원만 대기 중인 게 아닙니다. 미 중앙은행(Fed)의 유동성 공급도 이어질 것입니다.
Fed의 2인자로 꼽히는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우리는 여전히 매우 어려운 환경에 있다"며 "아직 어떤 노력도 뒤로 물러나는 것을 고려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Fed의 유동성 공급으로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지금은 적어도 디스인플레이션 압력을 보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Fed의 자산은 지난 6월1일 7조1652억달러까지 치솟은 뒤 몇 주간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 6일 6조9207억달러까지 감소했습니다. 이를 놓고 Fed가 조금씩 발을 빼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줄어든 자산의 대부분은 스왑계약을 맺은 해외 중앙은행들이 달러 수급이 원활해지면서 스왑계약을 되돌린 것입니다.
제롬 파월 의장이 수십 차례 밝혔듯 Fed가 쓸 수 있는 도구는 아직 많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현재 Fed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자산규모는 35% 수준이고 올해 말에도 38% 수준에 그칩니다. 이는 주요 선진국 가운데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경우 57%에 달하며 일본은행은 현재 118%입니다. 영국의 영란은행마저 38%로 Fed보다 그 비율이 높습니다. Fed가 일본은행 수준으로 돈을 쓸 수 있다고 추정할 경우, 지금보다 세배 가량 더 퍼부을 수 있는 겁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