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제자백가] "남의 선생 되기를 언제나 경계하라"

도덕이란 잣대로 남을 단죄하는 부류
우환 키우고 결국 자신이 찔리기 마련
윤리는 자기 삶 반성하는 기준이어야

임건순 < 동양철학자·'제자백가인간을 말하다' 저자 >
유교사상의 본질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도덕적으로 살자’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살기 위한 가르침의 묶음이 유교사상일 것인데,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 공부해야 하고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것인데, 도덕적인 사람이 되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그 도덕적인 사람은 나아가서 벼슬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선생이 돼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유가가 지향하는 삶이고, 동아시아 사회에서 이상적인 인간의 모델이었다. 벼슬자리는 지극히 한정돼 있으니 유가가 말하는 도덕적 인간이 되기는 사실 바꿔 말해 타인의 스승 되기, 즉 선생 되기다. 스승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수신하는 것인데, 《맹자(孟子)》에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의 우환은 타인의 선생이 되는 걸 좋아하는 데 있다.”사람의 우환과 걱정거리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선생 되기를 좋아함에 있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 들으면 좋아할 명언이다. 특히 나이 많은 이들의 선생질과 오지랖에 지쳐 있는 젊은이들이 말이다. 정말 타인의 일에 간섭하고 오지랖질에 선생질하고 거기에서 불필요한 문제들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조금 더 넓은 시야에서 저 말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남의 선생 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단순히 지나친 간섭 행위와 오지랖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부족이라는 문제로 읽어 봤으면 한다는 거다.

남의 선생이 되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선생질을 자주 하는 게 아니라 도덕과 윤리란 문제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 그것이 정말 남의 선생 되기를 좋아하는 자의 행동이 아닐까? 습관에 가까울 정도로 도덕의 잣대를 타인에게 들이대는 사람이야말로 선생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에는 그런 사람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함부로 타인의 삶을 단죄와 단정, 평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도덕을 타인을 찌르는 수단, 더 나아가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탐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정치 무대와 담론의 장에서 적잖이 볼 수 있는 현상인데, 그 선생 되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거대한 위선과 은폐된 악, 인간성의 왜곡이란 문제가 그러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 봤으면 좋겠다. 도덕은 철저히 남이 아니라 자신만을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도덕과 윤리는 자신의 삶을 판단하는 기준과 내 삶의 방향성에 한정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도덕에 대해 우리가 늘 가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도덕으로 함부로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이 많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크게 생긴다고 해서 도덕 자체가 필요 없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도덕과 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질문 던지기는 해야 할 것이다. 도덕과 윤리는 어디까지나 내 삶을 반성하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만족해야 하고, 내 삶의 방향성으로만 기능해야 한다. 그렇게 한정돼야지 선을 넘어 타인의 삶에 간섭하고 공격하는 창이 돼선 안 된다는 성찰 말이다. 그것이 진정한 도덕적 삶의 자세이고 사회를 도덕화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타인을 향하는 도덕과 윤리는 타인의 삶을 억누르고 나아가 사회를 반(反)도덕화, 비(非)윤리화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결국에는 그 창이 자신을 향한다는 것이다. 남을 찔렀던 창으로 자신의 목을 스스로 찌르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맹자가 남긴 명언이 많다.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 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 하다”…. 맹자의 무수한 명언 중에서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말이 이 말인 것 같다. “남의 선생 되기를 언제나 경계하라.” 우리 현실, 특히 정치 현실을 보면 늘 그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