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6억으로 만든 '알바' 8000개…'취업률 마사지'에 분노한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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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그 유명한 'K-세금주도성장'인가요?"
행정안전부가 '공공데이터 청년 인턴십'이라는 이름으로 8000여명의 인턴을 모집한다는 게시글이 20일 온라인 취업 커뮤니티에 올라오자 잇따라 달린 댓글이다. "취업률 통계 낼 시즌이 왔나보다" "8000명이 머리띠 매고 시위하면 행안부 공무원으로 전환 가능하느냐" 등의 분노와 조롱이 섞인 댓글들도 여러 개 달렸다. 정부가 대규모 청년 인턴 사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사업의 수혜를 보게 될 청년들이 되레 들끓고 있다. "정부가 세금으로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들을 달래고, 취업률을 '눈속임'하려 한다"는 게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정부가 이처럼 훌륭한 조건으로 대규모 인턴 채용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국판 뉴딜 사업의 핵심과제인 '데이터 댐' 구축을 위한 인턴십 프로그램이라는 거창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4개월짜리 '단순 아르바이트'일 뿐이라는 게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시각이다.수도권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전모씨는 "경기 악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올해 취업 시장은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며 "정부 대책이 고작 세금으로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찍어내는 것이라니 너무 속이 상하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명문 사립대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한 취업준비생은 "취업이 안 돼 속앓이를 하는 청년들을 단기 아르바이트로 고용해 취업률을 끌어올리려는 수단으로 쓰려는 것 같아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안부가 제공한 '공공데이터 청년 인턴십 업무 정의서'를 살펴보면 인턴 사원의 업무는 단순 행정보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무 정의서에는 인턴의 역할을 "행정·공공기관의 공공데이터 업무담당자를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턴 업무는 "컴퓨터와 엑셀 등 기본적인 정보화역량을 보유하고, 소정의 교육을 마치면 수행이 가능하다"고도 설명했다.한 발전 공기업에 다니는 A씨는 "3~4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하고 떠날 학생들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수도 없고, 따로 시간을 내 교육을 하기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결국 복사나 서류정리 등 잡무를 맡기고, 남는 시간은 대부분 자유시간으로 준다"며 "공공기관 인턴은 '180만원을 받으면서 다니는 독서실'로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
80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을 공공데이터 분야에 한정해 인턴으로 뽑는 것은 지나친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8000여명을 4개월간 월 180만원씩 주며 고용하려면 최소 576억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인건비를 비롯해 총 공공데이터 청년 인턴 사업에 들어가는 총 예산은 886억원"이라고 설명했다. 단기 알바 한 명을 고용하는 데 1000만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청년 인턴 사업은 실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일자리 정책이라기 보단 사실상 청년 복지 정책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는 현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단기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자리를 양산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며 "청년 인턴 사업은 청년 수당 지급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낮은 수준의 복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한편 행안부는 청년 인턴십 사업 외에도 3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확보한 1조3400억원으로 30만 개에 달하는 공공일자리를 제공하는 '코로나19 극복 희망일자리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행정안전부가 '공공데이터 청년 인턴십'이라는 이름으로 8000여명의 인턴을 모집한다는 게시글이 20일 온라인 취업 커뮤니티에 올라오자 잇따라 달린 댓글이다. "취업률 통계 낼 시즌이 왔나보다" "8000명이 머리띠 매고 시위하면 행안부 공무원으로 전환 가능하느냐" 등의 분노와 조롱이 섞인 댓글들도 여러 개 달렸다. 정부가 대규모 청년 인턴 사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사업의 수혜를 보게 될 청년들이 되레 들끓고 있다. "정부가 세금으로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들을 달래고, 취업률을 '눈속임'하려 한다"는 게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청년들 취업률 올리는 수단으로 사용하나"
행안부는 22일부터 '공공데이터 청년 인턴십'에 참가할 8000여명의 청년 인턴을 모집한다고 21일 밝혔다. 만 19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 8000여명을 학력과 전공, 성별, 어학성적 등 자격 제한 없이 선발한다. 선발된 인원은 오는 9월부터 약 4개월여간 전국의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주 5일 40시간 근무하게 된다. 급여는 세전 월 180만원가량이다. 출장비와 교통비, 교육비 등도 추가로 지급한다.정부가 이처럼 훌륭한 조건으로 대규모 인턴 채용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국판 뉴딜 사업의 핵심과제인 '데이터 댐' 구축을 위한 인턴십 프로그램이라는 거창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4개월짜리 '단순 아르바이트'일 뿐이라는 게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시각이다.수도권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전모씨는 "경기 악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올해 취업 시장은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며 "정부 대책이 고작 세금으로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찍어내는 것이라니 너무 속이 상하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명문 사립대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한 취업준비생은 "취업이 안 돼 속앓이를 하는 청년들을 단기 아르바이트로 고용해 취업률을 끌어올리려는 수단으로 쓰려는 것 같아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일자리 사업 아닌 복지 사업에 가깝다는 지적도
행안부는 공공데이터 청년 인턴십이 단기 아르바이트라는 지적은 오해라고 해명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번 인턴십은 청년들에게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전문적인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데이터 분야에서 역량을 키운 청년들이 관련 업계로 취업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하지만 행안부가 제공한 '공공데이터 청년 인턴십 업무 정의서'를 살펴보면 인턴 사원의 업무는 단순 행정보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무 정의서에는 인턴의 역할을 "행정·공공기관의 공공데이터 업무담당자를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턴 업무는 "컴퓨터와 엑셀 등 기본적인 정보화역량을 보유하고, 소정의 교육을 마치면 수행이 가능하다"고도 설명했다.한 발전 공기업에 다니는 A씨는 "3~4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하고 떠날 학생들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수도 없고, 따로 시간을 내 교육을 하기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결국 복사나 서류정리 등 잡무를 맡기고, 남는 시간은 대부분 자유시간으로 준다"며 "공공기관 인턴은 '180만원을 받으면서 다니는 독서실'로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
80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을 공공데이터 분야에 한정해 인턴으로 뽑는 것은 지나친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8000여명을 4개월간 월 180만원씩 주며 고용하려면 최소 576억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인건비를 비롯해 총 공공데이터 청년 인턴 사업에 들어가는 총 예산은 886억원"이라고 설명했다. 단기 알바 한 명을 고용하는 데 1000만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청년 인턴 사업은 실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일자리 정책이라기 보단 사실상 청년 복지 정책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는 현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단기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자리를 양산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며 "청년 인턴 사업은 청년 수당 지급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낮은 수준의 복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한편 행안부는 청년 인턴십 사업 외에도 3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확보한 1조3400억원으로 30만 개에 달하는 공공일자리를 제공하는 '코로나19 극복 희망일자리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