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성장 전기 맞은 디지털 헬스케어…한국은 뚜렷한 방향성 없이 '변죽'만

최윤섭의 헬스케어 돋보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는 여러 산업에 타격을 주고 있지만 디지털 헬스케어는 오히려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기존의 의료나 건강관리에 선택지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락헬스가 최근 내놓은 2020년 상반기 투자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에 사상 최대 투자금이 몰렸다. 코로나 사태로 경기침체 우려가 높아지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는 위축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오히려 6조원에 이르는 투자가 상반기에 이뤄지며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주요 분야로는 원격의료를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는 코로나로 인한 각종 규제 완화가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미국 의료서비스센터(CMS)가 원격진료에 대한 수가를 대면 진료와 동등하게 부여하는 결정이 주효했는데, 코로나 이후에도 이 기조가 유지될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CMS 수장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공언했다.

디지털 치료제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건강 관리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미국에서는 국민의 정신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학회지에 따르면 성인 13.6%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2018년(3.9%)에 비하면 크게 상승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접근성이 높고, 인구 수준으로 확장 가능하며, 비대면으로 서비스되는 디지털 치료제가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소프트웨어로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로, 정신건강 영역에서는 우울증, 불면증, 중독, 불안, ADHD, 조현병 등의 치료에 적용될 수 있다. 이번 상반기에 이 분야에 대한 투자 역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지난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팬데믹 상황의 국민 정신건강을 위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정신 질환 관련 디지털 치료제의 시장 출시 전 인허가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각종 디지털 치료제가 출시됐다. 이렇게 코로나19 상황에서 디지털 치료제를 적극 활용하는 곳은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호주 등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들 국가에서는 의료 보험에서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팬데믹 상황의 한시적 결정일 수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디지털 치료제가 현장에서 활용되면서 의료진 및 환자의 경험과 함께 실세계 데이터(RWD)가 선제적으로 축적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감염 관리가 잘 되지 않는 외국에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용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실세계 데이터는 기술의 효과성, 안전성, 비용 대비 효과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는 향후 큰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한국도 최근 비대면 산업 육성 의지를 밝히고 있고, 혁신의료기기 관련 법령도 제정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뚜렷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 특히 각종 지원책에는 모두 의료 수가 부분이 빠져 있다. 아무리 지원책이 많아도 적절한 수가가 없다면 산업 육성은커녕 현장에서 사용될 수조차 없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예기치 못한 방향과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는 큰 전기를 맞으면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되고 있다. 한국도 이 기회를 잡고자 한다면 더 명확하고, 실질적이며, 실효성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