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디지털 뉴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단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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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불법' 시각 버려야 5G 살아나“이동통신시장에는 극단적인 시장 실패가 발생했다. 같은 매장에서 같은 단말기를 구매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가격이 다른 차별이 빚어졌다.”
법 개정 아니라 폐지 고민해야 할 때
김태훈 IT 과학부 차장
2015년 7월 통신 정책을 총괄하던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위공무원이 본지에 보내온 기고문의 한 대목이다. 2014년 10월 시행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이를 반박한 글이다.단통법은 이용자 차별을 막기 위해 통신사가 소비자에게 주는 지원금을 사전에 고지하도록 도입된 제도다. 일부 사람만 단말기를 싸게 사고 나머지는 ‘호갱(호구+고객)’이 되는 일을 막아보려는 취지다. 정부가 시장의 경쟁 방식까지 설계하려는 시도에 비판이 쏟아졌다. 이처럼 숱한 논란을 불러왔던 법이 도입된 지 6년. 단통법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 2월 통신 3사, 유통업체, 시민단체들과 협의회를 꾸려 법 개정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10일 열린 토론회에서 개정 방향의 윤곽이 처음 드러났는데, 우려할 대목이 적지 않았다. 일부 완화되는 조항에도 불구하고 통신사가 휴대폰 유통점에 주는 판매 장려금까지 새로 규제하는 방안이 담겼기 때문이다. 지원금을 사전 공시하는 지금 방식으로도 차별을 막지 못하자 통신사와 판매점 간 도매 거래까지 들여다보겠다는 시도다.
방송통신위원회는 8일 지원금을 차별적으로 줬다는 이유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에 단통법 도입 후 최대 규모인 51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방통위가 통신사에 과징금을 때리는 일은 단통법을 도입한 이후에도 연례행사였다. 차별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인데, 이를 시장 실패라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도리어 시장 경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차별을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게 더 억지스럽다는 견해가 우세하다.유통 규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시장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시장조사업체 베이스트리트리서치에 따르면 스마트폰 교체 주기는 2014년 23개월에서 지난해 33개월로 길어졌다. 통신시장의 주요 경쟁 지표로 통하는 번호이동 가입자 수는 2013년 990만 명에서 지난해 580만 명으로 40% 이상 줄었다. 정부가 단통법의 성과로 꼽는 가계통신비 절감도 단말기 교체 주기가 길어지고 그마저도 저가 단말기, 중고폰으로 대체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등 소비 전반이 축소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창출하는 ‘디지털 뉴딜’ 계획을 발표했다. ‘데이터 고속도로’인 5세대(5G) 이동통신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 최초 상용화를 자랑하며 닻을 올린 5G의 위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가입자 증가세가 더디고 전국망 투자도 늦춰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통신 시장의 침체는 더 깊어졌다. 세계 각국은 5G 투자를 지원하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단통법 같은 이용자 차별 문제를 고민하는 국가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5G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원금 차별=불법’이라는 단통법 프레임부터 내려놔야 한다. 디지털 뉴딜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도 이제는 단통법 개정이 아니라 폐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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