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빼고 다 올랐다…주식·금·은·원유 가격 '유동성 랠리'

Fed, 코로나 이후 '공격적 돈풀기'
달러인덱스 석달여 만에 7% 추락

안전자산 금값 9년 만에 최고
경기회복 기대감에 은 수요 증가
WTI·브렌트유도 40달러대 회복

미국 달러화를 제외한 주식, 금, 은, 원유 등 주요 자산 가격이 일제히 오르고 있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이 동시에 오르는 ‘이상 현상’이다.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풀어놓은 돈이 수익을 좇아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을 구분하지 않고 몰려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Fed 양적완화에 달러 가치 하락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외환시장에서 달러인덱스는 장중 94.99로 밀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 ‘달러 사재기’ 움직임이 강했던 지난 3월 말의 고점(102.99) 대비 약 7% 내려앉았다. 달러인덱스는 유로, 엔, 파운드 등 6개 통화를 기준으로 미 달러화 가치를 산정한 지수다.

달러 약세와 달리 금, 은, 원유 등 주요 상품자산 가격은 오름세가 뚜렷하다. 시장에서 ‘달러만 빼고 다 오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근월물은 9년 만의 최고가인 온스당 1860달러에 거래됐다. 은 근월물은 약 7% 급등한 온스당 22.910달러에 손바뀜됐다. 2014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40달러를 뛰어넘었다. 8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배럴당 41.96달러, 9월물 브렌트유는 44.89달러로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유가 전쟁’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마크 헤펠레 UBS글로벌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이 계속 돈을 찍어내면서 달러 가치는 떨어지고, 시장에 넘쳐나는 유동성이 주식 채권 금 은 등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구분 없이 몰려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미 중앙은행(Fed)은 고강도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돈을 무한정 찍어내서라도 경기침체를 막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M2(총통화)는 지난 넉 달 동안 3조달러 급증했다. Fed에 따르면 지난 3월 15조8350억달러였던 M2는 지난 6일 기준 18조5220억달러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는 1조~3조달러 규모의 추가 부양책을 추진 중이다. 미 정부가 추가 재정 투입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고 Fed가 이를 매입하면 시중에 그만큼 돈이 더 풀린다. 달러 가치는 그만큼 하락할 전망이다.

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잦아든 코로나19가 미국에선 오히려 확산하면서 미국의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달러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이 때문에 미 국채 금리가 급락(채권가격은 상승)하면서 해외 투자자 달러 수요도 줄었다.

유럽연합(EU)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지난 21일 7500억유로(약 1030조원) 규모의 경제회복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한 것도 달러 하락에 영향을 줬다. 투자은행 JP모간의 데이비드 켈리 수석글로벌전략가는 “그간 EU 경제에 부족했던 안정감을 준 조치”라며 “투자자들이 (미국 대신) 유럽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은·원유값은 나란히 상승

안전자산 중 하나인 달러 가치가 내리자 세계 유동성은 금, 은 등을 향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과 은은 세계 경제가 불안정할 때 주식·채권 대안을 모색하는 투자자들이 찾는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씨티은행은 금값이 앞으로 6~9개월 안에 사상 최고치로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은과 원유 등 산업용 원자재 수요도 늘었다. EU가 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 조성 계획을 발표하자 각국 정부가 대규모 부양안을 통해 공장 재가동 등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원유 수요가 증가했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에선 S&P500에너지섹터지수가 6% 이상 뛰었다. 최근 은값이 크게 뛴 것도 이 때문이다. 은은 전자제품부터 태양광 패널까지 각종 산업에 쓰인다. 시장조사업체 RBC캐피털마켓에 따르면 은 수요의 약 55%가 산업용 원자재 수요다.

선한결 기자/뉴욕=김현석 특파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