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민주노총, 동행이냐 파국이냐…오늘밤 갈림길
입력
수정
표결 결과 오늘 저녁 10시께 나올 듯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23일 밤 대의원 대회를 열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의 추인 여부를 결정한다. 이 자리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정이 손을 맞잡느냐 아니면 끝내 파국을 맞느냐를 정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치권 추인 촉구…"사회적 책임 보여달라"
만약 민주노총 내 강경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합의안의 추인이 부결되면 현 집행부가 총 사퇴하고 사실상 노정 갈등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향후 노정간 대화와 사회적대화에 민주노총의 참여가 무산되고 비판 여론이 대두할 것으로 보인다.그동안 기업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친노동 정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노동계에 '러브콜'을 보내온 정부도 정책 노선의 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민주노총 내에서 강경파가 주도권을 쥐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제조현장에서 추투(秋鬪)가 확산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명환 위원장 "합의안 부결시 집행부 총사퇴"
노동계에 의하면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온라인으로 71차 임시 대의원대회를 개최한다. 민주노총이 온라인 방식의 대의원대회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게 여의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민주노총 조합원을 대표하는 약 1500명의 대의원은 인증된 웹사이트에 접속해 노사정 합의안을 놓고 전자투표로 찬반 여부를 결정한다.앞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올해 4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처음 제안했고 노사정 대표자회의에도 참여했다. 방안에는 고용 유지, 기업 살리기, 사회 안전망 확충 등을 위한 협력 등이 담겨 있다.
당시 사회적 대화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래 22년 만에 양대노총이 모두 참여하는 노사정 대화라는 점에서 이목을 모았지만 대화를 처음 제안한 민주노총이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합의안의 추인을 얻지 못했고 협약식도 무산됐다. 이에 김명환 위원장은 직권으로 임시 대의원대회를 소집해 대의원들의 뜻을 묻기로 했고 오늘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만일 대의원대회에서도 합의안이 부결되면 본인과 집행부가 사퇴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이후에도 김명환 위원장은 대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하고 합의안 찬성 호소문을 여러차례 냈으나, 표결 결과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심지어 합의문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합의문 폐기가 이미 예고됐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지금껏 재적대의원 1480명 중 810명(약 55%)의 반대 의사를 모았다면서, 이에 따라 출석 대의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하는 대회 구조상 표결 결과는 부결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김명환 위원장은 조합원 설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그는 정파 논리에 따라 중대 결정마저 쉽사리 뒤바꾸는 기존 민주노총 노동운동의 허점을 공개적으로 꼬집기까지 했다.김명환 위원장은 지난 20일 영상 연설을 통해 "(민노총 내부) 정파 조직이 대중 조직 위에 군림하거나, 다수 의견과 물리적 압력 또는 줄 세우기로 민주노총의 중요한 사회적 교섭을 끝내는 것은 100만 민주노총 대중 조직에 해가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의원대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 결과를 따를 것"이라며 "다만 우리 민주노총이 취약계층과 사각지대 노동자들과 함께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그런 민주노총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투표 결과 향후 노동운동 분기점 전망
이번 대의원대회 투표 결과는 민주노총 노동운동에도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찬성파는 노사정 합의안을 추인하고 이행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대화와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파는 합의안을 폐기하고 정부와 자본을 상대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만약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이 추인되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협약이 완성되는 것은 물론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화의 핵심축으로 설 수 있을 거란 분석이다.
또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사정 6개 주체가 국난 극복을 위한 합의에 참여하는 것은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노사정 합의 이후 22년 만이어서 사회적 합의라는 상징성도 크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반대로 합의문의 최종 폐기될 경우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 전원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게 된다. 노사정 합의안이 부결돼 민주노총이 불참하더라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중심으로 이행 방안이 논의되지만, 합의의 무게감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민주노총은 조합원 수가 100만명을 넘어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노총에 등극한 상태다. 이에 따라 양적인 성장과 함께 질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태년 "사회적 대타협 선도국가 가기 위한 필수전략"
정치권에서도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만약 내일 대의원 대회에서 합의안 추인이 부결되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사회적 연대와 책임이 약해진다"고 합의안 추인을 촉구했다.김태년 원내대표는 전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사정 합의가 무산되면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취약계층과 노동자"라며 "사회적 대타협은 하면 좋고, 안하면 그만인 선택사항이 아니라 글로벌 선도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전략"이라고 강조했다.그러면서 "민주노총이 노동계 대표 조직으로서 요구와 투쟁만 하는 조직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라는 것을 보여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