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타 치하루가 붉은 실로 연결한 세계

가나아트 개인전 '비트윈 어스'
300㎡에 달하는 공간 전체가 붉은 실로 가득 채워졌다. 바닥에는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조금씩 다른 모양의 나무 의자 30개가 놓였다.

거미줄처럼, 미세한 혈관처럼 촘촘하게 뻗은 실은 의자와도 연결됐다.

관람객은 천장과 벽, 의자 사이에 뒤엉킨 무수히 많은 실이 만든 붉은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일본 작가 시오타 치하루 개인전에 설치된 대형 작품 '비트윈 어스(Between Us)'로, 이번 전시 제목이기도 하다.

실은 시오타 치하루의 예술세계를 대표하는 재료다.

작가는 회화에서 선을 그리는 것처럼 실을 엮어 공간을 완성한다.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정신세계, 주변과 연결된 인간관계를 실로 표현한다.

누군가 사용하던 의자는 개인 존재를 나타낸다.

결국 작품은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이자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작업은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의자를 모으는 것으로 시작됐다.

헌 의자에는 더 많은 흔적과 기억이 남아 있기에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의자를 수집했다.

그렇게 모은 의자와 한국산 붉은 실로 작가 지시에 따라 10명이 12일에 걸쳐 작업을 완성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하듯 각 의자는 1~2m 간격으로 떨어져 있지만, 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코로나19로 전에 없던 단절을 경험 중인 가운데 시오타 치하루가 만든 공간은 삶과 죽음, 관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인간의 유한함과 그에 따른 불안한 내면을 작업 소재로 드로잉,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어린 시절 할머니 무덤에서 느낀 공포, 이웃집에서 일어난 화재의 기억, 두 번의 암 투병으로 겪은 죽음에 대한 공포 등에서 비롯된 고민과 트라우마를 작품에 투영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세밀하게 칼로 도려낸 가죽을 전시장 천장에 건 '아웃 오브 마이 보디(Out of my body)'처럼 혈관, 머리카락, 피부 등을 연상케 하는 작업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가 엿보인다.

다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영혼과 기억은 남는다는 철학을 작품에 담아낸다.

오사카 출신인 시오타 치하루는 유학 생활을 한 독일에서 생활하며 활동한다.

2015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일본관 대표작가로 참여하는 등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지난 2014년 부산비엔날레에 참가했으며, 올해 4월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부산은 작가의 한국인 남편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와 한남동 가나아트나인원에서 동시에 열린다. 대형 설치작품 등이 있는 평창동 전시는 다음 달 23일까지, 드로잉·판화·조각 등을 선보이는 나인원 전시는 다음 달 2일까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