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 스위트 액센츄어 CEO, 성차별 뚫고 금융·기업 변호사 경륜

'다양성·디지털 혁신' 컨설팅 명성
美재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세계 최대 컨설팅사 수장
인종·성차별 없는 조직 솔선수범
경영진 유색인종 비율 늘리기로
일러스트=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1999년 미국의 로펌 ‘크래버스 스웨인 앤드 무어’ 회의실. 촉망받던 8년차 변호사 줄리 스위트는 파트너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진급 관련 회의에 들어간 스위트에게 한 임원이 질문을 던졌다. “여태까지 일하면서 여성으로서 무의식적인 편견을 겪어봤나요?” 대답하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왔다. 30분 넘게 주체할 수 없는 흐느낌이 멈추질 않았다.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순간이 스쳐갔다.

현재 스위트는 미국 재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힌다. 지난해 9월 세계 최대 컨설팅업체 액센츄어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뒤 그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건 기업 조직 내 다양성 강화다. 20여 년 전 로펌 회의실에서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다른 여성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나는 꼭 해낼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자’는 다짐을 했고, 그날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이후 스위트는 글로벌 기업들의 조직 내 혁신과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평등한 문화가 기업 생산성 높여”

액센츄어는 최근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스위트는 성명을 통해 “평등한 글로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조치들을 과감하게 실행할 것”이라며 몇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2025년까지 경영진 내 흑인과 라틴계 등 유색인종 비율을 끌어올리면서 파트너 기업 및 지역사회와 협력해 평등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액센츄어 내 흑인 직원은 전체의 9% 수준이다.

인종뿐 아니라 성별에 따른 무의식적 차별을 줄이고 여성 임원을 늘려 양성평등 조직문화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현재 42%인 여성 직원 비중을 2025년까지 50%로 높이고 임원진의 여성 비율은 25%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액센츄어의 전 세계 직원은 51만3000명 수준이다. 회사는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제를 확대하고 지원 시스템을 강화하며 임금 격차를 해소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리피니티브는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액센츄어를 다양성 및 포용성 지수가 가장 높은 회사로 선정하기도 했다.

스위트는 미국 기업의 40%가 조직 선진화 계획조차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기업 내 다양성은 사업 성공과 혁신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에 최우선순위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양성을 갖춘 조직은 더 많은 고용 등 발전 기회를 갖게 된다”고 역설했다. 얼마 전 낸 보고서에선 워킹맘을 ‘활용도 높은 인적 자원’으로 극찬했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워킹맘 직원들이 보유한 모성애는 사회적 욕구라는 모습으로 발현돼 조직에 대한 기여도와 충성도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스위트는 “기업이 워킹맘을 잘 활용하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난했던 소녀, 성공을 꿈꾸다

스위트는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의 투스틴이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은 지독하게 가난했다. 아버지는 중학교만 졸업한 뒤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는 미용사였다. 부모님은 ‘배워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14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내가 너무 빨리 커서 옷을 자주 사야 했는데 늘 돈이 부족했다”며 “바지 한 벌로 버텨야만 했다”고 말했다. 어릴 적 한 가게에서 일하면서 인사 업무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됐다. 그는 “안내원을 뽑는 게 내 일이었는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손해를 메우기 위해 월급 일부를 반납했다”고 회상했다.

변호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클레어몬트 매케나대 시절이었다.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공부한 뒤 크래버스 스웨인 앤드 무어에 입사했다. 1841년 설립된 이 유서 깊은 로펌에서 역사상 아홉 번째 여성 파트너가 됐다. 금융과 인수합병(M&A), 기업 자문 등의 분야를 거쳤다. 2010년 액센츄어로 이직했으며 성과를 인정받아 5년 만에 북미사업부 CEO로 승진했다. 북미는 전체 매출의 49%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북미사업부 CEO 당시 고객사를 꾸준히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액센츄어 CEO가 된 건 지난해 9월이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스위트가 액센츄어 CEO로 취임하면서 S&P500 기업 중 여성이 CEO인 기업은 27곳이 됐다”고 보도했다.

전면적 변화로 디지털 혁신 이끌어내

최근 기업들의 화두는 단연 ‘디지털 혁신’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있는 요즘, 산업 생태계가 디지털로 옮겨가는 변곡점에 있다는 게 액센츄어의 설명이다. 스위트는 ‘디지털의 진정한 의미는 업무 방식과 의사결정, 고객과 소통하는 방법을 새롭게 하는 것’이란 철학을 갖고 있다. 기업들이 그동안 일해온 방식을 전면 혁신해야 제대로 된 디지털화가 가능하다.

스위트는 “많은 근로자가 기업의 디지털화로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한다”며 “CEO가 먼저 대화에 나서 재교육 등 대안을 제시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액센츄어는 컨설팅을 통해 기업들의 비핵심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4만 개의 일자리를 자동화했다”며 “절감한 예산의 60%를 재투자, 재교육 등에 쓰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3년간 30만 명이 넘는 근로자가 재교육을 받았다.

액센츄어 역시 지난 10여 년간 자발적인 혁신에 집중하며 디지털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업무의 99%가 클라우드에서 이뤄지고 있다. 광고대행사인 드로가5 등 기업 인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다양한 역량과 규모도 갖췄다. 1989년 설립된 액센츄어는 120여 개국에서 40여 개 산업에 대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432억달러를 기록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