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돈 된다"…테마주처럼 '뭉칫돈' 몰리는 부동산 시장 [김하나의 R까기]

유동성 늘어난 부동산 시장, 증시만큼 투자 움직임 빨라
개발 호재 발표하고 시장 들썩이게 한 정부 여당, 이제는 언론탓
김태년 원내대표 천도론 후 상승한 실거래 확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 회사는 그 분과 관련이 없습니다", "회장님이 동창일 뿐이지 사업적으로 연관되는 게 없는데 경고를 받으니 황당할 뿐입니다"….(테마주 주식담당자들)

대통령이나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같이 유력 정치인을 뽑는 시기가 되면 주식시장에서는 테마주들이 요동을 치곤 한다. 과거에는 순위별로 주가가 갈렸지만 최근에는 토론회의 분위기나 페이스북에 내놓은 발언의 호감도, 당 내에서의 입지 등 다양한 요인으로 테마주들이 움직인다.테마주로 엮인 당사자들은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게 일상이다. 주식담당자들은 공시에 주가 급등 사유를 써내기 바쁘니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물론 주가가 오르는 건 이와는 다른 문제다. 테마주로라도 언급이 되면 회사가 주목받고 내제된 가치가 한번 더 조명받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테마주로 엮였다가 상승분 보다 더 폭락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주가상승을 반기지 않을 주식담당자는 없다.

테마주처럼 뭉칫돈 이동하는 부동산 시장

최근 부동산 시장을 보고 있노라면 주식 시장에서 움직이는 테마주를 보는 것 같다. '유력 정치인의 발언 → 호재 예상 테마주로 매수세 유입 → 주가급등 → 선행매매자의 차익 실현 및 실투자자자 후행' 등의 순서다. 서울 강남 용산을 비롯해 3기 신도시 예정지, GTX 역세권 부근, 충북 청주, 수도권 택지예정지 그리고 세종시까지 말이다. 정부 여당의 입에서 시작된 테마는 순식간에 부동산 현지 시장으로 전달된다. 매물은 들어가고 호가가 오르는데 시차가 실시간에 가까워졌다. '달리는 말에 올라타'라는 주식격언처럼 부동산 시장에도 테마가 형성되거나 오르는 지역, 지역 내의 강남에 돈이 더 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시장은 주식과는 다르게 자금 규모가 크다보니 느리게 후행적으로 움직였다. 단기 투자라는 주식과는 다르게 묻어두는 장기 투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아파트에 묶여 있을 만한 돈들이 흘러다니고 있다. 정보와 유동성이 넘치면서 돈 되는 곳으로 빠르게 뭉칫돈이 움직이고 있다. 주식시장과 별반 다른 게 없다는 얘기다.주식 시장과의 차이라면 '매물' 정도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매물없이 호가가 오르는 게 가능하다. '이 정도 호가인데 거래하겠냐'는 배짱 매물도 나온다. 매도자들도 시장에 돈 많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아서다. 초창기 한 두개 튀어오른 물건을 보고 해석은 분분하지만, 시세로 자리잡는 건 한 순간이다. 공인중개사들도 쏟아지는 문의에 처음엔 당황하지만 이를 시장으로 받아들인다.

문재인 정부들어 빠르게 집값이 상승하는 시장의 진원지는 정부 여당의 입이였다. 돈 될만한 (혹은 안될지도 모르지만) 말들을 쏟아내고 집값이 오르는 건 투기꾼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언론 탓까지 추가됐다. 서울 집값에 불을 끄겠다고 세종시에 불을 지르곤, "불이야"라고 소리친 사람이 불을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여당의 계속된 발표에 단기투자·급등락 시장으로 변질

지난 20일 세종 천도론을 꺼내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가세했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 논의 시작 후 세종시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언론이 오히려 세종이나 특정 지역의 집값 상승을, 결과적으로 그런 (언론) 보도로 인하여 부추기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또 "특정 단지 아파트를 딱 찍어서 호가를 갖고 '집값이 많이 올랐다' 이렇게 보도를 하는 것"이라며 "한국감정원이 발표를 한 게 없다"고 주장했다.통계에 의지하면서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는 정부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3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 본회의에서 "문재인 정부들어 집값이 11% 올랐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올해들어서만 20%가 넘게 집값이 오른 곳이다. 평균으로 말이다. 5억원이었던 집값이 평균 6억원이 됐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당연히 20%를 웃돈다. 40% 이상 집값이 오른 곳도 줄줄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야당도 행정수도 완성논의에 서둘러 동참바란다"고 말했다. 사진=뉴스1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세종시 아파트 거래가가 올라오고 있다. 지난 20일 김 대표의 발언과 언론보도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주말 이전에 체결된 거래들이다. 새롬동 T 아파트의 전용 59㎡는 지난 22일 6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세종시에서 소형으론 처음으로 6억원을 돌파했다. 층수 차이는 있지만, 직전 거래가는 지난 9일 5억2000만원이어서 보름도 안돼 9000만원이 오르게 됐다. 종촌동 A아파트는 전용 59㎡가 지난 23일 4억6000만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기록했다. 종촌동 H아파트 또한 지난 22일 59㎡가 4억800만원에 매매됐다. 마찬가지로 신고가인데다 이 단지에서 처음으로 4억원을 돌파했다.

현재 시장에 매물은 사라졌고 호가가 오르는 건 사실이다. 시장에 매물이 없으니 거래가 활발히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가 종종 높은 가격에 매매가가 나오지만, 거래량이 많지 않다보니 감정원 통계에 집계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현지 주민들 시장 왜곡 호소하지만…이미 매물품귀

세종시 현지 주민들의 목소리는 주식담당자들의 얘기와 비슷하다. '수도 이전 때문에 오르는 게 아니다', '이제 오르는 것이지 그동안 소외됐던 지역이었다', '10억원 안 넘는 집도 수두룩하다' 등이다. 때아닌 주목에 조용히 살고 있던 지역 주민들은 '이게 뭔가' 싶을 수 있다. 과열된 집값으로 수도 이전이 무산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세종시만 겪는 일이 아니다. 구리 갈매지구에서도 겪고 있고, 몇달 전 충북 청주에서도 벌어졌던 일이다.

지난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내놓은 비판을 곱씹게 된다. 6·17대책이 나온 후 경실련은 "코로나 사태 등으로 서울 아파트값이 잠시 주춤했던 상황에서 정부는 5월6일 용산 미니신도시와 재개발 공공참여 등 투기를 부추기는 정책을 발표했다"며 "정부의 발표로 용산과 여의도가 들썩였다. 6월 초엔 잠실 스포츠 MICE 민간투자 개발 정보를 흘렸다. 잠잠하던 강남권 아파트값이 발표 전후 1억씩 폭등했다"고 논평했다.

넘치는 유동성에 주식시장과 다르지 않은 게 현재의 부동산 시장이다. 이러한 시장에서는 스파크 하나만 튀어도 순식간에 큰 불이 된다. 정부와 여당에서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주식에는 사람이 살지 않지만, 부동산에는 사람이 산다. 테마주같이 엮어들어가 집값이 오르고 전셋값이 오르는 동안 무주택자들은 주거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세종시는 공급부족과 다주택자 매물로 이미 주거불안이 시작된 지역이었다. 정부 여당이 서울 수도권 부동산 문제에 매몰된 동안 세종시 무주택자들을 위한 공급대책이나 전셋값 상승문제를 얼마나 고민해 봤는지 묻고 싶다. 특별공급으로 집을 받았다가 정부의 압박을 계기(?)로 처분한 정부에 대고 물어볼 질문은 아닌가도 싶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