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디 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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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9
김진성 < 고려사이버대 총장 president5@cuk.edu >요즘은 대로변뿐 아니라 뒷골목에서도 커피를 마실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해진 지는 100년도 훨씬 더 됐다고 한다. 그동안 커피 파는 곳이 많아지고 소비량도 늘어나 ‘커피공화국’이란 별명까지 붙여졌단다. 다양한 커피 종류와 함께 제조 방법도 달라 무엇을 마실지 주문하는 것조차 정말 어렵다.
커피음료 중에 ‘라떼’에서 유래한 신조어로 ‘Latte is horse’가 있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과거를 회상하며 내뱉는, 나이 든 사람들의 표현을 풍자한 말이다. 변변치 못한 어른들의 자랑과 타이름이 오죽 짜증 났으면 이런 말이 유행할까? 기회만 생기면 꼰대짓 하려 용을 써대니 참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여기서 그 꼰대들이 주로 한다는 옛날이야기를 하려니 걱정이 앞선다.예전엔 대부분 가족이 주택에 모여 살았다. 안방에선 집안 어른들이, 건넌방에선 아이들이 같이 지냈다. 그러고도 남는 방이 있으면 피를 섞지도 않은 사람에게 세를 줘 함께 살았다. 물론 집 전체를 혼자 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한 대문 안에서 여러 가구가 함께 생활하는 일이 보통이었다. 주인집과 세 들어온 사람들이 모여 사니 말이 단독일 뿐 공동주택인 셈이다. 좁은 집에 네댓 가정이 거주하는 경우도 많았다. 봉숭아와 채송화, 수세미 한 그루 심어진 손바닥 크기 마당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매일 아침 집주인은 마당을 쓸고, 집 주변 길에 나가 빗자루질하고 물을 뿌려대기도 했다. 셋방 사람과 문안인사를 나누고 지나치는 사람들과 눈인사도 건넸다. 말 그대로 집 안팎이 만남과 소통의 장이었던 것이다. 함께 사는 데에 왜 불편함이 없었겠나? 조금씩 서로 배려하고 작은 일도 감사하며 살았던 게지.
점점 아파트가 많아져 요즘은 공동주택이 대세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사는데도 서로 간 교류는 예전 같지 않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 앞 청소할 일이 없으니 아침 문안인사도 필요 없다. 어쩌다 눈길이 마주쳐도 짐짓 가던 길을 재촉한다. 부동산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니 눈과 입, 그리고 마음까지 모두 날아간 때문일까?예전의 기억들만 갖고 단독으로 이사해 보니 거기는 생판 딴 세상이었다. 나와 가족들이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내야 했다. 이전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즐기던 것들을 세어 보기로 했다. 깨끗이 청소된 복도와 주변, 화단의 예쁜 꽃나무, 수목방제, 보안경비, 시설보수, 집안소독, 분리수거 등등. 끝이 없을 것 같아 금세 셈하던 것을 멈췄다.
최근 아파트 입주민과 관리 인력들 사이에 발생하는 어이없는 소식이 부쩍 늘었다. 관리비 냈다고 내가 월급 준다는 생각은 말아야지. 개인 비서도 아닌데 내 맘에 안 든다고 난리법석을 떨지도 말아야지. 내가 할 일들 대신해 주니 감사 좀 하면 어떨까? 왠지 오늘은 나도 꼰대가 되고 싶다. “내가 아파트에 살 때는 말이야. 미처 몰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