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자, 배수로 철망 틈새로 탈출…장관은 "북한 보도로 인지"

163cm·54kg 탈북민, 군 감시장비에도 찍혀…탈출 후 구명조끼 입고 한강 건너
국방장관·합참의장 나란히 '경계실패' 고개 숙여…"책임 깊이 통감"
한국 정착 3년만에 다시 북한으로 넘어간 탈북민 김모(24) 씨의 '대범한' 월북 경로가 윤곽을 드러냈다.김씨는 철책 밑 배수로의 낡은 이중 구조물을 벌려 빠져나가는 등 손쉽게 탈출한 뒤, 강 수위가 가장 높은 때에 맞춰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한강을 건넌 것으로 추정된다.

군 수뇌부는 북한 보도를 통해 월북 사실이 처음 알려진 지 이틀 만에 '경계실패'를 인정하며 또 한번 고개를 숙였다.

28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 당국은 김씨가 인천 강화도 월미곳에 있는 정자인 '연미정' 인근 배수로를 통해서 월북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연미정은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인 정자로, 연합뉴스가 전날 현장 취재한 결과 김씨의 월북루트는 연미정 맞은편에 있는 배수로로 확인됐다.

배수로는 철책 밑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물이 흘러나가도록 설치된 형태로, 내부엔 일자 쇠창살 형태의 철근 구조물이 있다.

1차 장애물인 셈이다.다만 전날 현장에서 확인한 철근 구조물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낡고 일부는 틈새가 벌어져 있었다.


김씨의 신장은 163cm, 몸무게 54kg로 왜소한 체격으로, 철근 틈새를 손으로 벌려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철근 구조물을 지나면 2차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바퀴모양으로 된 윤형 철조망이 있는데, 이 역시 많이 노후화돼 왜소한 체구의 김씨가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박한기 합동참모본부 의장도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장애물이 좀 오래돼서, 윤형 철조망의 경우 많이 노후화한 부분이 식별됐다"고 답했다.

이어 "장애물을 벌리고 나갈 여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이어 "월북 시점이 만조 때라서 (배수로 탈출 후) 부유물이 떠오른 상황에서 월북자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머리만 내놓고 떠서 갔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개성에서 농장원으로 일하던 김씨는 3년 전 탈북할 당시엔 김포 월곶면 조강리 해병 2사단 초소를 통해 귀순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강리는 김씨가 이번에 월북 당시 군 감시를 피해 통과한 강화도 월곳리 연미정 인근 배수로와 불과 6㎞가량 떨어져 있다.

김씨가 귀순 때 이용했던 루트가 아닌 새로운 루트로 월북한 것은 해병 초소가 있는 귀순 장소 인근으로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씨는 월북 전 필요한 자금을 환전하고 해당 지역 일대를 사전답사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비교적 오랜 기간 치밀하게 월북을 준비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씨의 월북 전후 행적은 군 감시장비에도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준락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군 감시장비에 포착된 영상을 정밀 분석 중"이라고 말해 김씨의 월북 전후 행적이 군 감시장비에 찍혔음을 시사했다.

통상 군 감시장비의 경우 운용병 등이 녹화 영상을 실시간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씨의 행적이 감시장비에 포착됐는데도 이를 놓친 셈이다.

정 장관도 이날 국회에서 월북 발생 사실을 언제 인지했냐는 질문에 "북한 방송이 나온 이후에 확인하고 인지했다"고 인정했다.

또 이번 사건과 관련해 "모든 부분의 무한 책임을 국방 장관이 지고 있다"며 "백번 지적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사과했다.

박 의장도 이번 사건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며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은 이번 월북 사건을 계기로 해병 2사단 지역(김포 반도~서측 도서) 경계 태세를 점검하고 있다.국방조사본부와 합참 전비 태세 검열단이 경찰 등과 함께 현장을 확인 중이라고 군은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