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선박 1척에서만 44명 우르르…바다 위 떠 있는 배양접시 신세

1인 1실 사용 등 방역지침 준수 여부 확인조차 안 돼…관리 감독 주체도 없어
육상 선원격리시설 이동도 불가한 상황…사실상 감염 무방비 상태
부산항에 입항한 러시아 선박 1척에서 선원 94명의 절반가량이 확진 판정을 받자 선박 내 부실한 선내격리가 추가 감염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더욱이 감염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소위 '바다 위 떠 있는 배양접시' 신세지만 뚜렷한 대책도 없어 항만당국 및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8일 부산항 북항 신선대부두에 들어온 러시아 어선 페트르원호(7천733t)에는 지난 24일 선원 32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데 이어 29일 12명의 추가 확진자가 발생했다.

총 선원 94명 중 44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이 배는 작업차 승선했던 선박수리업체 직원 1명은 물론 동료 직원, 이들의 자녀 등에 대한 2차 감염까지 속출해 슈퍼 감염 우려를 낳는 곳이다. 이처럼 페트르원호에서 대거 집단 감염이 이어지자 음성 판정을 받고 선내 격리하는 선원에 대한 관리, 감시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페트르원호의 경우 7천733t급으로 다른 배에 비해 선박 규모가 큰 데다가, 승선원 수도 94명으로 많은 편에 속한다.

애초 무더기로 확진 판정을 받은 32명은 현재 코로나19 전담 의료기관인 부산의료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나머지 62명이 선내 격리 중 12명이 추가로 감염됐다. 검역소 측은 선내에 격리된 선원들이 1인 1실을 썼다고 했지만 이를 사실상 관리 감독할 주체가 없다.

이 때문에 선원 다수가 격리된 구역을 이탈해 생활하다가 추가 확진자가 줄줄이 나온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부산국립검역소는 "격리하는 선원에게 각방을 쓰는 등 방역지침 준수를 지시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시행되는지에 대한 관리, 감시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선사에서 선내 상황을 확인한다고 하지만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등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주체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외국인 교대 선원을 위한 수용시설도 부족한 상황에서 확진자와 함께 승선했다가 음성판정을 받은 이들을 위한 임시시설을 추가로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처지다.

해수부는 하선하는 외국인 선원을 위한 격리시설을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교대 목적으로 하선하는 선원들로 가득 차면서 포화상태에 이를 지경이다.

검역소 측은 "이전에 확진자가 나온 레귤호, 카이로스호에서 음성판정을 받은 나머지 선원을 해수부에서 마련한 별도 시설에 격리했더니 추가 감염 없이 관리가 잘 됐다"며 "추가 확진을 막기 위해선 음성 판정받은 이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 선박 발 확진자가 계속해서 나오자 29일 정부는 러시아 등 선원 입항 시 방역강화대상 6개국처럼 음성확인서를 의무로 제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미 항만을 통한 지역감염까지 번진 후 내놓은 늑장 대응인 데다, 오히려 입국 후 국내 이동 과정에서 감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실효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