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자"…'임대차 3법' 묘수 찾는 집주인들 [집코노미]

세입자에게 보상하면 '계약갱신 거절' 가능
갱신 아닌 신규 계약엔 전월세 상한제 미적용
임차료 높여 보상금 보전…사실상 주택권리금
서울 마포의 한 중개업소에 주변 아파트 단지 시세판이 붙어 있다. 한경DB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임대차시장의 불안 요인도 커지고 있다. 보증금 인상이 막힌 임대인들 사이에선 보상금을 주고 세입자를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음 임차인에게 그만큼 증액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상가 임대차시장의 권리금 개념이 주택시장에도 생기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고된다.

“세입자 면접이라도 봐야”

30일 국회에 따르면 전날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결된 ‘주택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이 본회의 처리만을 앞두고 있다. 통과될 경우 다음달 법안 공포 즉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이 시행된다.당장 임대료를 올릴 수 없게 된 집주인들은 벌써부터 ‘묘수풀이’에 들어갔다. 보상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개정안에서 합의에 따라 보상을 제공할 경우 계약갱신 거절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상도동에 다가구주택을 보유한 김모 씨는 “기존 세입자에게 보상금을 주고 내보낸 뒤 다음 임차인에게 그만큼의 임대료를 올리면 된다”며 “5% 증액 제한은 강제로 갱신되는 계약만 적용되고 신규 계약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상가 임대차시장의 권리금 개념이 주택시장에도 도입되는 셈이다. 상가 권리금은 임차인끼리 주고받는 형태다. 그러나 주택에선 임대인이 주변 시세에 맞춰 임대료를 조절하는 형태로 전용될 수 있다.
상한제와 청구권은 개정안 시행 이전 계약까지 소급해 적용된다. 이 때문에 미리 임대료를 올리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마포 아파트에 세입자를 들인 이모 씨는 “지금 살고 있는 임차인을 빨리 내보내고 새 계약을 맺어야 보증금을 올릴 수 있다”면서 “퇴거를 요청할 수 있는 방법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전했다.전격적인 도입에 다양한 갈등과 혼란도 예상된다. 당장 임대료 인상이 막히게 된 집주인들 사이에선 “이전 임대인에게 고분고분한 세입자라는 추천서라도 받아가며 임차인을 들여야 할 판”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계약이 만료될 때 주택에 대한 원상복구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임대인들도 있다. 한 다주택자는 “세입자들의 전세대출에 대해 절대 동의해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알아서 나갈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산권 침해·비용 전가 부작용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도입이 논의됐지만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그러나 21대 국회 들어 거여(巨與) 정국이 만들어지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번 개정안은 윤후덕·박주민·백혜련·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들을 조율해 상정한 것이다. 법사위 검토에선 다양한 부작용 가능성이 지적됐지만 도입이 강행됐다.가장 큰 부작용은 단기적인 임대차시장 불안이다. 임대차 보장 기간이 길어질수록 신규 계약이 맺어질 땐 임대료가 더욱 높아져 오히려 임차인에게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2+2년’ 형태의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가 동시 도입되는 상황에 대해 법무부가 지난해 진행한 연구용역에선 임대료 변동률이 최고 8.32%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집주인들이 보상심리로 보증금을 올릴수록 신규 임차인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질 수 있는 셈이다. 법사위의 법안 검토보고서 역시 “한국은 유럽과 달리 주택시장이 불안정하고 부동산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보는 인식이 보편적”이라며 “장기 임대차 정책을 도입할 경우 임대인들의 경제적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봤다.

개정안은 임대료 증액의 상한을 5%로 두고 지자체별로 다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입법 취지와 달리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법원행정처는 “증액 비율을 법률에 명시하면 경기 변동에 따른 탄력적 대응이 어려워질 소지가 있어 보완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지자체별 기준에 큰 차이가 있다면 지역 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