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권리 보호 vs 수술기피 조장…의료계 CCTV '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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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의무설치' 논란이재명 경기지사가 불을 붙인 ‘수술실 폐쇄회로TV(CCTV) 설치’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다. 국회에는 한층 강화된 새 법안이 제출된 반면 대한의사협회 등은 해외에서도 사례가 없는 일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의사들이 소송 부담으로 수술을 포기할 수 있어 오히려 환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대리수술·환자 성추행 등 발생에
與 '수술실 CCTV 의무화' 발의
의료계 "의사, 소송부담 느끼면
중요한 수술 꺼릴 가능성 높아"
환자들 "의료분쟁 명확하게 해결"
“수술실 범죄 예방 가능”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은 ‘수술실 안전과 인권침해 예방법’, ‘의료분쟁 신속정확해결법’입니다.”(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면 의사는 방어적으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선의 의술을 받을 환자의 권리가 박탈될 우려가 있습니다.”(송명제 대한의사협회 대외협력이사)
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수술실 CCTV 설치를 위한 토론회’에서는 찬반론자들이 치열한 논박을 벌였다. 수술실 CCTV 설치 논쟁은 최근 이재명 지사가 국회의원 300명에게 입법화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민사회단체는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의사단체는 의사들이 소극적으로 수술을 하게 돼 환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반대한다.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주장은 대리수술, 환자 성추행 등 수술실 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나왔다. 20대 국회에서도 CCTV 설치 의무화법이 발의됐으나 처리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는 김 의원이 한층 강화된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CCTV 설치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을 담았다. 안기종 대표는 “대리수술 범죄 등의 예방이 1차 목적, 수술 과정의 입증이 2차 목적”이라며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는 사람들 외에 제3의 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환자에게 독”
의료계에서는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측은 “법으로 강제할 게 아니라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의사들이 의료사고 등으로 인한 소송 부담 때문에 쉽게 수술을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 송명제 이사는 “고난도 수술을 하는 의사 중 일부는 환자가 CCTV 촬영 요청 시 수술을 안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했다.의협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법으로 수술실 CCTV 설치를 강제한 사례가 없다”고 했다.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유방확대 수술 중 부분마취제 과다 사용으로 환자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2018년 발의됐다. 하지만 의료계 반발 등으로 상원을 통과하지 못하고 부결됐다. 매사추세츠주 등 미국의 다른 주에서도 병원이 수술 장면을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지만 통과하지 못했다.
자발적 설치 사례도
전문가들은 CCTV 설치 여부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수술실 전경을 찍는 CCTV만으로는 의료 과실을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의료과실 입증 책임을 환자에게 지게 하는 현 제도를 바꾸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인재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는 “환자들이 CCTV 설치를 요구하는 것은 의료사고로 인한 불신 때문”이라며 “민법상 의료사고가 나면 입증 책임이 환자에게 있는데, 이를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이 지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일부에서는 캐나다 토론토 성 미카엘 병원의 ‘수술실 블랙박스’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의료진 간 대화를 포함해 수술기구의 움직임, 환자의 혈압·체온·심박수 등을 기록하는 장치다. 수술 후 환자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파악할 수 있고, CCTV보다 사생활 침해 논란이 적다. 수술 때 기록을 복기해 다음 수술의 개선점을 찾아낸다는 것도 장점이다.
국내에서도 민간의료기관이 수술실 CCTV를 자발적으로 설치한 사례가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휴대용 CCTV를 20여 대 보유하고 있다. 환자가 요청하면 수술 과정을 촬영한다.
최다은/김남영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