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문재인 정부의 위험한 불장난

사진=연합뉴스
4.15 총선 직후 '문재인 정부는 정말로 집값 하락을 원할까'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끝도 없이 부동산 투기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념에 매몰된 정책으로 소득 양극화는 확대시키고 코로나 이전에 이미 경제를 빈사상태로 만든 이 정부에 유권자들이 그토록 많은 표를 몰아준 것을 보고 나서였다.

우리나라 가계자산의 70% 이상, 아니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값을 단기간내에 이처럼 폭등시켜준 정권은 없었다. 이 정부가 싫은 유권자들도 집값을 거의 두배로 만들어 준 것에 대해서는 내색은 못하지만 솔직히 싫지는 않고 이 정권은 어쩌면 그런 점을 이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집값을 잡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잡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는 게 요지였다.당시 칼럼에 대한 인터넷 댓글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아니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혹은 "당신은 참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이군요"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달이 지난 요즘, "문 정권이 집값 하락을 바라지 않을 지 모른다"는 의혹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제대로 공급은 안늘리고 수요만 억제하고 벌주는 식으로는 절대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는 건 상식인데 계속 이런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부동산에 이어 이번엔 또 다른 자산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요즘 증시를 보면 지금이 과연 코로나 경제위기 상황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지난 3월 1400 포인트대까지 폭락했던 코스피지수는 어느 새 하락폭을 모두 만회하고 연중 최고치마저 조만간 돌파할 기세다. 종가 기준 연중 최고치(지난 1월 22일, 2267.25 포인트) 는 아직 깨지지 않았지만 장중 최고치는 지난 7월31일 2281.41 포인트를 찍으며 이미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발표되는 경제 지표마다 참담한 숫자를 담고 있음에도 주가가 이처럼 거침없이 오르는 것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풀린 유동성, 다시말해 돈 때문이다.가뜩이나 금리는 제로에 가까운데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 정부가 막대한 돈은 풀어대니 자연히 부동산 주식 금과 같은 자산 시장에 돈이 몰리고 가격도 치솟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주가 상승은 말그대로 사상누각이다. 어떤 충격적 이벤트나 핑곗거리만 생기면 썰물처럼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증시는 갑자기 폭락세로 돌변할 수도 있다. 이런 사례는 과거 여러차례 있었고 가장 최근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들 수 있다.
미국 증시 역시 나스닥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최근 급등세를 이어가면서 버블 논란이 심심찮게 나온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미국 증시에 광기(mania)가 나타나고 있다"며 주식과 실물경제의 괴리현상에 대해 경고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코로나 위기가 닥치기 전, 미국 경제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던 반면 한국의 경제 상황은 이미 빈사상태에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양국 증시에 모두 '버블'이 끼어있지만 경제의 펀더멘털까지 감안해보면 우리 증시의 거품이 훨씬 심각하다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만약의 경우 급락 가능성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투자자들이나 시장관계자들에게 그런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는 반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주식시장을 떠받쳐온 동력인 개인투자자 응원이 필요한 시기"라고 발언했다.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로 2023년부터 모든 상장주식에 과세할 계획인 주식양도차익 과세의 기본공제액은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훌쩍 높아졌다. 소액 개인 주식투자자들은 사실상 양도세를 내지 않게 된 것이다. 개인들의 주식투자를 '독려' 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풍부한 유동성이 자산 가격 버블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하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입장을 180도 바꿔 "개인투자자 애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제는 주가마저 정부가 나서서 노골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잇단 성추문으로 여당 지지율이 떨어지자 급기야 주식시장 부양책까지 꺼내들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장기적인 경기회복과 함께 부동산, 주식시장이 점진적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가계 자산도 늘고 기업들도 증시에서 자금조달이 원활해져 과감한 투자에 나서는 등 경제 전체에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실물경제는 바닥 모르고 추락중이고 고용시장은 얼어붙었다. 삼성전자 네이버 등 극소수의 기업은 실적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생사의 기로에 처해있다. 미국을 비롯, 우리의 주요 수출국들의 성장률 급락으로 수출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실물경기가 이런데 부동산과 주식시장에서는 광풍이 불고 있고 정부는 이를 방조 내지는 적극 협조까지 하고 나서겠다고 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주식투자하는 '동학개미'들을 보듬자고 하니 당장 인기를 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날 해외발 쇼크라도 닥쳐 주가가 또 다시 급락세를 탄다면 그 때 투자자들의 손실은 어떻게 할 건가.

제대로 된 주가 상승을 바라는 정부라면 기업들이 펄펄 뛰게 만드는 정책부터 서둘러 내놓는 게 순서다.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주가는 자연히 오르게 되고 개인투자자들의 투자수익도 안정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정부가 개인투자자의 세금을 깎아주는 등 당장의 인기가 아닌, 진정성을 갖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모습을 보인다면 정부 정책의 진의를 자꾸 의심하는 일 또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집값과 전세값은 급등하고 실물은 변한 게 없는데 거품과 꼼수로 증시를 달굴 궁리만 한다면 정책 신뢰성은 점점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발(發) 자산가격 띄우기가 정말 위험한 '불장난'처럼 느껴지는 건 나뿐인가.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