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도시를 걷는 여자들·뷰티풀 젠더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 도시를 걷는 여자들 =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걷기'와 '여성'을 연결해 여성이 어떻게 도시 환경에서 배제돼 왔는지, 그런데도 도시는 여성들에게 어떤 자유와 기쁨을 안겨주는지, 여성이 도시를 걷기 시작할 때 걷기라는 행위의 의미가 어떻게 뒤바뀌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분명히 존재했으나 지워져 온 여성의 지성사와 문화사를 되찾기 위해 전 세계의 대도시를 걷고 자신보다 앞서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베네치아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며 그들의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낸다.

예컨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저자가 보기에 여성이 방 밖으로 나갔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장한 채 돌아다니고 수많은 애인을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 조르주 상드는 1832년 6월 파리에서 일어난 민중봉기가 거리를 피로 물들이고도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데 염증을 품고 파리를 떠나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 노앙으로 돌아가 소설 '발랑틴'을 쓰게 된다. 책은 이 밖에도 헤밍웨이의 전 부인으로만 알려진 마사 겔혼이 '여성 종군기자'로서 부닥친 제약이나 픽션과 사실 사이에서의 고뇌를 소설가로서 어떻게 다뤘는지를 보여주고 소피 칼에게서는 '추적'이라는 남성적 행위가 여성의 것이 됐을 때 어떤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지를, 아녜스 바르다에게서는 카메라와 영화라는 매체 뒤에 여성이 설 때 시선의 의미가 어떻게 전복되는지를 읽어낸다.

미국에서 태어나 파리로 이주했고 여러 도시를 떠돌며 살아온 경험, 미국의 교외에서 자라나며 가졌던 도시에 대한 두려움과 선망, 이민자의 후손으로 어디에도 좀처럼 완벽하게 속하지 못하고 정착과 방황 사이를 오갔던 저자 자신의 경험도 풀어놓는다.

반비. 464쪽. 1만9천원.
▲ 뷰티풀 젠더 = 아이리스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젠더 정체성의 개념과 이를 둘러싼 문제들을 다채롭고 화려한 일러스트로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젠더 정체성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틀에 종속되지 않으며 살아가는 동안 계속 변화한다.

또한 한 사람의 정체성에는 젠더와 계급 등 요소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있으며 이런 복잡성은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책은 정체성 논의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해 인터섹스, 시스젠더, 앨라이, 젠더 플루이드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개념들을 백과사전처럼 정리하면서 이분법적인 젠더 구분은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해롭기까지 하다고 주장한다.

또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용, 인터섹스의 성 등 성소수자가 직면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낙태, 임금 격차, 미투 등 여성 문제, 흑인 남성의 높은 투옥률과 같은 인종 차별 문제에 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의 인터뷰,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 프리다 칼로 등 경계를 넘나들었던 유명인들의 사례와 저자 자신이 겪은 정체성에 관한 고민의 과정도 담았다.

까치. 236쪽. 1만8천원.
▲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응산·양효실 옮김.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젠더 및 퀴어 이론가인 저자가 2010년 브린 모어 대학교에서 진행한 시리즈 강연문 3개 등 강연 원고들을 수정, 보완해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 시위',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 '점령하라 운동', '터키 게지 공원의 집회' 등을 비롯해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 거주지를 요구하는 난민들이 벌이는 시위에서 정치, 민주주의, 인민, 행위성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도출한다.

저자에게 이들이 처한 취약성, 상호의존성, 불안정성은 극복하고 거부해야 하는 부정적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잠재적 평등과 살만한 삶의 조건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우리 서로 간 의무의 한 토대"라고 그는 강조한다.

저자는 취약한 이들이 벌이는 집회, 혹은 연대는 언제나 비폭력의 원칙을 따라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여성'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인정 폭력'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페미니즘은 '제대로 된 여자'라는 관념에 반대하기 위해 존재해 왔으며 페미니즘이 젠더에 기초한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페미니즘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창비. 356쪽. 2만3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