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최초 유럽 진출 화가 배운성을 만나다
입력
수정
지면A27
웅갤러리·본화랑 '배운성' 展
한국인 첫 유럽 유학파 서양화가
1930년대 독일·프랑스서 활동
파리 시절 48점, 20년 만에 전시
이국땅서 韓 풍습·한국인 그려

서울 자하문로 웅갤러리와 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배운성 展-1901~1978:근대를 열다’는 그의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판화 1점과 드로잉 1점을 포함한 48점이 처음 공개된 후 19년 만에 열리는 전시다.다섯 살 때 아버지를 잃은 배운성은 서울 낙원동의 큰 부자였던 백인기 집에서 일을 거들며 공부했다. 백인기의 도움으로 중동중학교를 마친 그는 또래였던 백인기의 아들 백명곤과 함께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간 뒤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경제학을 공부할 계획이었으나 베를린으로 가기 전 들렀던 마르세유의 박물관에서 유럽 명화들을 처음 접하고 진로를 바꿨다.

그런 배운성을 다시 역사의 무대로 불러낸 이가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이다. 1984년부터 파리에서 유학했던 전 원장은 1998~1999년께 배운성의 작품이 무더기로 남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6개월여의 줄다리기 끝에 48점을 두 차례에 걸쳐 사들였다. 전 원장은 “2000년 말 귀국해 이듬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배운성 작품을 처음 선보였는데 그때는 배운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태여서 백지 위의 전시였다”고 회고했다.
적잖은 연구 성과가 쌓인 가운데 열리는 이번 전시는 당시와 달리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전 원장은 “배운성은 유럽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활동한 첫 한국 화가”라며 “서양적 기법과 동양적 기법을 아우른 완숙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고 설명했다.배운성은 이국땅에서 한국의 풍습과 민속, 풍경, 한국인을 많이 그렸다. 그네뛰기, 널뛰기, 팽이 돌리기 등 아이들의 놀이와 빨래터 풍경, 무희와 고수, 두루마기 차림의 남자 등이 그림에 담겨 있다. 독일인 부인을 그린 ‘화가의 아내’ ‘꽃이 있는 정물’ 등 이국적인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전통문화대, 공주대 연구팀의 과학적 작품 분석 결과다. 자외선, 가시선, 적외선, 초분광, 테라헤르츠, X선 등으로 작품을 분석한 결과 통통한 아이의 옆얼굴을 그린 ‘애기 초상’의 경우 그 아래에 정면을 응시하는 다른 그림이 명확히 확인됐다. ‘두 여인과 아이’에서는 오른쪽 여인의 자세를 수정한 흔적과 함께 통통하고 입이 뭉툭한 개가 원래는 날씬하고 입이 길쭉했음이 드러났다. 연구팀은 이들 작품 외에 20여 점의 배운성 작품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