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500㎜ 더 쏟아지면 불탄 민둥산 무너질까 겁나"

산사태 대피한 음성 용대리 주민 비 그치자 보금자리 복귀
"큰비 예보 불안하지만, 밭에서 썩어가는 복숭아 수확 급해"

"수확철을 맞은 복숭아는 죄다 떨어져 성한 게 없고 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갔어요. 500㎜ 폭우가 또 퍼붓는다는데 뒷산이 무너져 마을을 덮칠까 겁이 납니다"
사흘 동안 쏟아지던 장대비가 그치고 햇볕이 들기 시작한 4일 충북 음성군 삼성면 용대리 마을 어귀에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10여명의 주민은 뒷산에서 쏟아진 토사가 들이쳐 흉물스럽게 변한 집과 뿌리째 뽑혀 쓰러진 복숭아나무, 도랑이 생긴 밭고랑 보면서 탄식을 쏟아냈다. 이들은 지난 2일 새벽 집중호우로 토사가 떠밀려 들어오는 보고 긴급 대피해 음성군이 마련한 임시생활시설에서 지내다가 이날 날이 개자 마을을 찾았다.
신모(84)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끔찍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우르릉'하는 굉음과 함께 갑자기 뒷산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진 물과 흙더미가 집 안으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혼비백산해 대피했다. 해발 150m로 높지는 않지만, 급경사를 이루는 뒷산에서 쏟아져 내린 물줄기는 그의 집뿐 아니라 4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신씨의 집 뒤 야산 자락에 있는 복숭아밭에는 나무가 뿌리째 뽑혀 쓰러졌고, 깊게 팬 고랑과 군데군데 쌓인 자갈과 흙더미는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양모(58)씨는 "큰 파도가 덮치는 것 같았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며 "과수원을 둘러보다 높은 곳으로 몸을 피했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물에 떠내려갔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1만2천㎡의 복숭아 농사를 하는 그는 "임시생활시설에서 지내다 비가 그쳐 복숭아밭을 둘러보러 왔는데 성한 나무가 없어 얼마나 건질 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2만4천㎡의 복숭아 농사를 짓는 신모(75)씨는 "폭우가 휩쓸고 가는 바람에 수확량이 작년보다 30%가량 줄어들 것 같다"며 "1상자에 2만8천원 하던 복숭아 가격도 1만2천대로 뚝 떨어져 손실이 이만저만 크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하늘이 하는 일을 어쩌겠나"고 자조하면서도 "조금이라도 건져볼 요량으로 새벽부터 남아 있는 복숭아를 수확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2년 전 큰 산불이 난 마을 뒷산의 조림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화를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양씨는 "산자락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3∼4㏊가 잿더미 되는 큰불로 민둥산이 됐다"며 "이번 비에 흙더미와 불에 탄 고목 등이 쓸려 내려오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곧 더 큰 비가 온다니 지반이 약해진 민둥산의 흙이 쏟아져 내릴까 걱정이 크다"며 "그렇지만 지금은 침수됐던 집보다도 밭에서 썩어가는 복숭아 수확이 급하다"며 과수원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