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호의 논점과 관점] 퇴색한 '수도 이전'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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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호 논설위원행정수도 이전은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가 사전 조율했거나 오래 연구해온 것은 아닌 듯하다. ‘이제부터 논의해보자’고 제안한 수준이다. 자칫 ‘아니면 말고’식 카드가 돼버리면 국면전환용이란 의구심이 굳어질 테니 여권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 와중에 메시지는 하나 던졌다. 민주당과 현 정부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자칭 ‘개혁’을 얼마나 별러왔는가 하는 점이다. 행정수도 이전 주장부터 전국을 들쑤셔놓은 ‘임대차 3법’, 다시 추진하는 각종 기업규제법과 노동관계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선 행정수도 이전 주장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정치를 그렇게 얄팍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오랜 숙제”라고 했다.
여전한 지역균형발전 집착증
‘반쪽짜리 수도 이전’에 그친 지금의 어정쩡한 상태를 지속할 것인가란 문제 제기는 할 만하다. 중앙정부 기능이 서울과 세종시로 찢어지며 생겨난 각종 비효율이 10년 넘게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현실을 모르는 이 없다. 하지만 수도 이전 재추진이 ‘지역균형발전’이란 명분을 앞세우는 것이라면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에 수년째 4차 산업혁명 열풍이 불고 있는데, 국토균형발전과 지역갈등 해소라는 옛 접근법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얘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지금 세계 주요국과 기업들은 ‘인더스트리 4.0’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류가 익히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기술융합 시대가 열리고,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모빌리티 혁명에 바이오 혁명이 불붙고 있다. 어디서나 ‘초연결’을 얘기하고, 가상과 현실세계가 서로 경쟁하고, 기업은 초격차를 만들어 생존의 길을 찾는다. 여기에선 물리적 공간과 거리의 개념보다 온라인과 가상세계의 경쟁력과 시장 선점이 중요하다. 전통적인 지역 단위 사고는 케케묵은 옛날식 사고일 뿐이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일부 정보기술(IT) 대기업만 좋은 실적을 올리는 현상을 바라볼 때도 그런 식의 도그마는 경계해야 한다.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나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나홀로 성장’을 이어간다면 이들의 시장지배력 확대와 독점 문제를 걸고넘어질 텐가, 아니면 경제 전반의 위기 극복 견인차가 되도록 박수쳐줄 것인가. 미국의 경우 하원이 최근 GAFA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청문회에 불러 독점 문제만 집요하게 따졌다.
초연결시대, 행정수도 보완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더더욱 경쟁력 있는 입지로 산업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매출 성장은 물론 고용과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는 국내 혁신성장기업의 6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고급 노동력일수록 고용 기회 이외에도 기후, 교육, 문화·레저, 엔터테인먼트 기회 등 요소를 감안해 수도권으로 밀려들고, 이들을 좇아 기업이 움직이기 때문이다.이런 ‘수도권 집중’ 문제는 가벼이 넘길 일도 아니지만 자연스런 시장의 수요와 요구를 정부가 틀어막고 통제하는 것도 좋은 대안은 아니다. 우선 지방의 혁신생태계를 잘 구축해 혁신기업들이 몰려오도록 해야 한다. 지역 인재와 지역 출신 기업가들을 중심으로 쾌적한 정주(定住) 환경과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필수다. 이런 게 지역균형발전의 바람직한 경로다. 갑작스런 ‘행정수도 이전’ 주장은 여기에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 서울 강남 집값을 잡으려고 발표했다는 비판까지 들어서는 균형발전도, 수도 기능 확대도 모두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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