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공모' 못 밝힌 검찰…'검언유착' 프레임 무리였나

떠들썩했던 4개월간 수사 일단락…내부 갈등·몸싸움 등 상처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한동훈(47·사법연수원 27기) 검사장과의 공모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고 이동재(35) 전 기자를 재판에 넘기면서 이른바 '검언유착' 프레임이 무리가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이 사건은 지난 3월 말 MBC가 '검언유착 의혹'을 보도하면서 시작된 의혹 제기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이후 정치권 등 개입 정황까지 불거지면서 '권언유착' 의혹까지 나오는 등 뒷말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일부 '검언유착' 주장에 편승해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벌인 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정진웅 부장검사)는 5일 이 전 기자와 후배 기자 등 2명을 기소하며 공소장에 한 검사장을 공범으로 적시하지 않았다.한 검사장 등 관련자를 계속 수사할 계획이지만, 수사 동력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 검사장이 수사 대상이 되면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간의 대립,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몸싸움 압수수색 등 갖가지 논란과 부작용을 낳았던 수사가 길어지면 검찰의 내홍이 깊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 4개월 수사 일단락…수사팀 내부 반발도 커
검찰은 이날 20일의 구속 기간이 만료되는 이 전 기자를 재판에 넘기면서 수사를 일단락지었지만, 한 검사장 등 나머지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하지만 검찰 정기인사 등을 고려할 때 4개월간의 떠들썩했던 수사가 이 전 기자와 후배 기자 등 2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사실상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무부는 이르면 6일 고위간부 인사를 단행하고, 이달 안에 중간간부 인사까지 할 계획이다.

수사 지휘라인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정현 1차장-정진웅 형사1부장의 거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검찰은 이 전 기자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도 한 검사장과의 공모 관계를 넣지 않았다.

이 전 기자의 구속 이후 이어진 수사에서도 공모 관계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전 기자가 이철(55·수감 중)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에게 다섯 차례 보낸 편지와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의 지난 2월 부산고검 대화 녹취록 외에 이렇다 할 추가 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녹취록도 수사팀이 일부를 편집해 무리하게 혐의 입증에 활용했다는 말도 나왔다.

수사팀 내부에서도 수사 방향과 처리를 두고 의견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부장급 이하 검사들이 한 검사장과의 공모 혐의를 적용하는 데 모두 반대해 이 지검장도 결국 이 의견을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 검찰, 한동훈 수사 계속 방침…비협조 등 난항 예상
검찰 입장에서는 한 검사장의 공모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치적인 수사라는 비판을 넘어서려면 어떻게든 수사를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한 검사장 수사를 계속한다고 하더라도 난항이 예상된다.

검찰은 한 검사장이 휴대전화 포렌식에 협조하지 않아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점, 피의자 소환에 응하지 않은 점, 한 차례 조사 후 조서 열람도 끝나지 않은 점 등을 토대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 검사장은 법조계·학계 등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수사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음에도 수사를 강행한 점 등을 들어 검찰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또한 KBS가 허위 녹취록을 근거로 오보를 낸 것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핵심 간부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검찰이 해명하기 전에는 검찰 조사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검사장은 KBS 보도 관계자 및 수사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소하고, KBS 관계자들을 상대로는 5억원대 소송도 낸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몸싸움 압수수색 사태'에 연루된 정진웅 부장에 대한 서울고검의 감찰 결과도 주목된다.

한 검사장은 수사팀장인 정진웅 부장을 독직폭행 혐의로 서울고검에 고소하고 감찰을 요청한 바 있다.

한 검사장은 지난달 29일 진정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정 부장도 조만간 서울고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 대검-수사팀 갈등에 수사지휘…추미애·이성윤 책임론도
이 사건은 윤 총장의 '측근 감싸기' 논란 속에 대검 지휘부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간의 갈등을 불러오고 15년 만에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상황까지 초래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윤 총장은 강요미수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며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강행했다가 추 장관의 수사지휘에 따라 철회했다.

수사팀은 대검의 보강수사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고 수사의 독립성 보장 등을 요구하며 갈등을 빚었다.

추 장관은 이 사건을 '검언유착'으로 규정하며 수사팀이 독립적으로 수사를 하도록 힘을 실어줬지만,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로 볼 때 적지 않은 부담을 지게 됐다.

수사를 총괄한 이 지검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다.

추 장관은 지난달 2일 수사지휘 원문에서는 "검사와 기자가 공모해 재소자에게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별건으로 형사 처벌될 수 있다고 협박해 특정 인사의 비위에 관한 진술을 강요한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라며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들이 제시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은 최근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생한 수사팀장인 정진웅 부장과 한 검사장의 몸싸움에 이어 감청 논란을 빚은 이례적인 유심(가입자 식별 모듈·USIM) 압수수색 집행으로 눈총을 받기도 했다.

수사팀이 이날 이 전 기자 등을 기소하면서 윤 총장에게 미리 보고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문제가 제기됐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 원문에는 수사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수사팀은 1차장 결재를 거쳐 전날 이 지검장에게 보고했지만 대검 보고를 생략한 채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이 전 기자 등의 기소 사실을 먼저 알렸다.수사팀은 이날 중 대검에 사후 보고를 할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