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세상에 손 내밀어 화해한다는 것

강유정 < 콘텐츠평론가·강남대 교수 iamcritic@naver.com >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할리우드 역사 속 한 장면에서 출발한다.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여러 가지 나쁜 우연이 겹쳐 발생한 이 사건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워낙 수법이 잔인하기도 했지만 피해자가 유명한 여배우였고, 남편 역시 당시 최고 수준의 감독이었기에 더 그랬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B급 감성을 가진 무규칙 이종 결합적 감독이다. 타란티노가 감독이 되기 전에 비디오 대여점 직원이었다는 것은 꽤나 유명한 일화다. 그는 그 당시 미국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홍콩 누아르 영화들을 섭렵하며 감성을 키웠다고 말한 바 있다. 무규칙 이종, B급 감성이라는 수식어답게 타란티노의 영화 세계는 달랐다. 싸구려 취급받던 대중문화에 나름의 감성을 담아낸, 매우 개성적인 악동이었던 셈이다.

타란티노 감독의 별명 중 하나는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다. 잔인한 폭력과 피의 복수를 그려내길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타란티노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것과 전혀 다른 감성을 보여준다. 잔혹했던 역사에 피의 복수를 하는 게 아니라 영화적 구원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 제안이 무척이나 따뜻하고 뭉클하다.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얼룩을 지운다. 끔찍한 기록에 손을 내밀어 타란티노의 방식으로 화해를 청한 셈이다.

영화에서는 실제 삶에선 불가능한 일들이 이뤄지곤 한다. 슈퍼맨이 하늘을 날고, 아이언맨이 우주를 구한다. 멸망했던 지구가 복원되기도 하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환상들이 삶의 환부를 씻겨주곤 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문학 작품을 읽으며, 우리를 넘어뜨리고, 쓰러지게 하는 현실을 이해하고, 불가능을 넘어선다.

소설가 김연수는 그의 새 소설집 《일곱 해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썼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는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실현되지 못한 일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실패라고 부른다. 그러나 문학과 영화, 예술의 세계에선 실패가 세상을 이해하는 소중한 창이 된다.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게 역사라면 이야기꾼은 원했으나 갖지 못했던 것을 주목한다.

똑같이 행복한 가정보다 제각각 불행한 가정을 들여다본 톨스토이처럼. 그걸 누군가는 후회, 낙오, 실패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난 그것이야말로 세상에 손을 내미는 방법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멋진 화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