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세계 유일 '흑자 비행'…텅 빈 하늘길 화물로 견뎠다

2분기 매출 44% 감소에도
영업이익 1485억 '서프라이즈'

'역발상 전략' 통했다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

하반기엔 국제선 날개 펼까
여객 수요 회복될지 미지수
대한항공 직원들이 미국 시카고로 향하는 여객기 좌석에 카고시트백을 장착하고 있다. 카고시트백은 기내 좌석에 짐을 실을 수 있도록 특별 포장된 별도의 가방이다. /한경DB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확산되던 지난 4월 8일 대한항공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6개월간 휴업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1주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휴업 소식에 회사 분위기는 더 침통했다. 전체 직원의 70%에 달하는 1만여 명이 돌아가며 한 달씩 직장을 쉬어야 했다. 임원들은 급여를 최대 50% 반납했다. 1962년 회사 설립 이래 최대의 위기 앞에 노조도 고통분담에 동참했다.

실적은 예상대로 추락했다. 지난 1분기 56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남은 직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화물을 유치하고, 운송 효율을 높였다. 승무원들은 장시간의 비행 내내 마스크와 방역복을 착용한 채 안전 운항에 힘썼다. 대한항공 임직원들의 노력은 한 분기 만에 빛을 발했다. 코로나19로 국제선 여객노선이 사실상 올스톱한 가운데 2분기 148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시장 기대치를 여덟 배 이상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다.

글로벌 항공사 중 유일 흑자

대한항공이 6일 공시한 잠정실적에 따르면 올 2분기 매출은 거의 반토막이 났다. 전년 동기 대비 44.0% 감소한 1조6909억원에 그쳤다. 국제선을 비롯한 여객 수송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92.2% 급감했기 때문이다. 2분기 대한항공은 화물로 버텼다. 화물기 가동률을 높이고, 여객기에도 화물을 실어 나른 덕에 1485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었다. 한 분기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증권사들이 추정한 대한항공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181억원)보다 1304억원이나 많았다.

지금까지 2분기 실적을 발표한 글로벌 주요 항공사 중 영업흑자를 낸 곳은 대한항공뿐이다. 미국의 델타항공과 아메리칸에어라인은 각각 6조7493억원과 2조4886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프랑스·네덜란드 합작사인 에어프랑스·KLM그룹도 같은 기간 2조184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유럽 최대 항공사인 독일 루프트한자도 수조원대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화물수송 집중한 역발상 통했다

글로벌 주요 항공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화물기 운항을 대폭 줄인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오히려 화물수송에 주력했다. 여객기에 화물을 실어 날랐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주도한 이런 역발상이 2분기 흑자 전환으로 이어졌다는 게 항공업계의 분석이다.

대한항공은 올 2분기 화물 운송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고 이날 밝혔다. 글로벌 주요 항공사들의 2분기 화물 운송실적이 30~45%가량 급감한 것과 대비된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의 2분기 화물부문 매출도 1조2259억원으로, 전년 동기(5960억원) 대비 94.6%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세계 항공화물 시장 수요는 약 15%, 공급은 23% 감소했다. 화물 수요보다 공급이 크게 줄면서 화물운임이 상승했다. 지난 5월 주요 노선인 홍콩~북미 항공화물 운임은 ㎏당 8달러 선까지 치솟는 등 전년 동기 대비 2~3배에 달하기도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수년간 지속된 항공화물 시장의 불황에도 고효율 최신 화물기에 적극 투자한 게 주효했다”며 “여기에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하는 전략까지 적중해 실적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제선 수요 회복이 관건

시장에선 화물수송에 힘입은 대한항공의 ‘깜짝 실적’이 일회성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주요 항공사들도 지난 6월부터 화물 운송에 뛰어들면서 공급 부족 현상도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당 8달러 선까지 치솟았던 홍콩~북미 항공화물 운임은 4달러 선까지 하락했다. 항공업계는 전통적 항공 성수기로 꼽히는 3분기부터는 오히려 실적이 다시 하락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관건은 국제선 여객수요의 회복 여부다.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이 입국금지나 자가격리 조치를 섣불리 해제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렵다.

대한항공은 당분간 화물수송에 주력할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방역물품 및 전자상거래 물량, 반도체 장비 및 자동차 부품 수요 등을 적극 유치할 계획”이라며 “여객기 좌석을 떼어내 화물기로 활용하는 등 추가로 공급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